때로는 무기력에 잠겨 굴러다니며 지내느라,
때로는 반짝 찾아오는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느라 무척 바쁘게 살았다.
생산성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시간이 공평하게 밀도가 높았고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오직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로만 모든 수입을 채우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은 덕분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행동한 첫 해, 첫 달이었다.
일
돈 벌려고 하는 일
- 데이터 검수 재택 알바
- 이틀의 휴일을 제외하고 모든 영업일을 꽉 채워서 일했다. 집 밖으로 3박 4일을 나가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와중에도 일은 쉼없이 계속 했다. 높은 집중력과 꼼꼼함을 요하는 일이지만, 대신 통근을 할 필요도 없고 사람을 직접 마주할 일이 없어 체력도 감정도 소모되지 않는다. 그래서 해낼 수 있었다.
- 월 목표 수입의 70% 정도를 오직 이 알바로만 채운 첫 달이었다. 일을 시작한지는 반 년이 넘어가지만, 개개인의 숙련도와 회사의 사정에 따라 매달 할당받는 데이터 양이 달라지는 시스템상 덜 일하고 덜 버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에 책을 1천 부 찍고 고양이가 수술을 받아 큰 지출이 연달아 발생했을 때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알바를 알아보거나 첨삭 일을 다시 적극적으로 찾아볼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 첨삭 노동
-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모객을 하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모객 스트레스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작업을 의뢰했던 고객이 두 명이나 먼저 연락이 와서 뜻하지 않은 수입이 생겼다.
한 분은 본인 친구의 대학원 입시용 자기소개서를 맡겼고, 다른 한 분은 나와 함께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준비해서 한 회사에 합격을 한 뒤 경력을 쌓아 이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특히 타인에게 나를 추천한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그 추천인의 평판까지 걸리는 건데, 그걸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나를 믿고 다시 찾아주신 게 참 감사했다.
어느 정도 성장의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첨삭과 컨설팅은 하면 할수록 전문성과 노하우가 쌓여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재택 알바로는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긴 하다. 그래도 모객 스트레스라는 단점이 너무도 커서, 재택 알바 수입이 줄지 않는 이상 적극적으로 고려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결론: 이 정도로 조건이 잘 맞고 벌이도 충분한 일을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하던 일이 줄어들거나 잘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자. 하지만 나의 의지나 노력과는 관계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첨삭 시장 속으로 다시 뛰어들든 새로운 알바를 찾든 아무튼 그때 가서 고민하자. |
하고 싶어서 하는 일
- 모임 등 기획
- 글쓰기 모임 <원고 아니면 죽음을!> 4기 (20명 참가)
- 1기부터 늘 20명 안팎의 인원이 모집되었다. 내 기준에서는 기대를 한참 상회하고도 남는 숫자라서 매번 새로운 기수를 모집할 때마다 전만큼은 못 채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번에도 어쩌다보니 딱 스무 명의 참가자들을 모았다.
- 처음으로 오픈카톡방 없는 모임으로 운영중이다. 카톡방이 없으면 참가자들끼리 너무 서먹하게 느낄까봐 걱정했는데, 사실 그 전에도 활발히 대화하는 서너 명을 제외하면 다들 조용한 분위기이긴 했다. 쏟아지는 메세지들이 피로한데 그렇다고 자주 안 보면 공지를 놓칠까봐 걱정이 되었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나 역시 카톡방에 한 번 공지를 올리면 다시 수정할 수도 없고, 예약 전송도 안 되고, 공지에 대해서만 댓글을 받거나 읽은 사람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잘 됐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없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만족스럽다. - 글쓰기 인증 등 모든 활동을 다 온라인으로 하지만, 유일한 예외로 운영 기간 중 딱 한 번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즉석 글쓰기를 하는 일종의 모임 안의 모임을 운영했었다. 매 기수마다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모임 후 다들 만족스러워해서 이번 기수에도 당연히 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참가자 5명 중 4명이 당일 불참 통보를 해서... 모임을 위해 대관했던 공간에 지금 나 혼자 앉아서 이 회고를 쓰고 있다. ㅎ 얼결에 쾌적한 임시 작업실이 생긴 건 좋지만, 이 정도로 불참 비율이 (그것도 당일 통보 형식으로) 높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서 좀 허둥거렸다.
일단 못 오는 분들은 대관료 환불이 불가능한 점을 모두 수긍하셨지만, 자신은 올 수 있는데 다른 분들의 불참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모임이 취소 당한 분의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당일 이용 취소는 당연히 대관처에서도 환불을 안 해주기 때문에 환불을 받아 전달드릴 수 있는 돈도 없었고, 그렇다고 본인의 귀책이 아닌 이유로 환불이 어렵다고 말해버리면 나라도 기분이 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을 했냐고? 결말이 궁금하다면 2월에 열 <<어떤 모임>>을 기대해주세요. 후훗... (기승전모임..)
- 월간 실험실 시리즈 <나-관찰일지: 루틴을 지키면 행복해질까?> (10명 참가)
- 매월 또는 격월로 반복해왔거나 반복 가능한 모임(예: 원고 아니면 죽음을, 연옥피스 등)을 제외하고, 그때 그때 새롭게 솟아나는 호기심을 풀기 위해 '월간 실험실'이라는 카테고리의 모임을 신설하기로 했다.
- 그 첫 번째 순서로 연초에 하기 딱 좋은 '루틴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지루하게 루틴 인증 결과만 올리는 모임은 아니고, 루틴 실천에 성공을 하든 말든 일단 매일 계속 인증을 올리면서 '나에게 루틴이 어떤 의미인가? 루틴을 꼭 지켜야만 갓생인가?' 등을 자문하는 취지로 만들었다.
- 결론적으로 나의 의도가 아주 제대로 실현된 것 같지는 않다. 원칙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일단 매일 인증을 하는 건데, 대체로 인증을 하는 사람들은 루틴 실천 역시 성실하게 하는 분들이었고 루틴에서 멀어진 분들은 자연스럽게 인증 자체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루틴이란 그저 자신의 신체와 생활을 엄격히 통제하며 생산성을 관리해서 얻을 수 있는 성취만 진정한 성공이라고 설파하는 신자유주의 논리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뭔가 루틴에 대한 냉소적인 리액션이나 깨달음도 나오길 바랐는데 그런 케이스는 없었다. 다들 루틴 실천에 긍정적이었고,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보다 자세한 소감은 오늘 밤에 예정된 완주축하회에서 들어봐야 알겠지만. - 아무튼 나의 의도와 상관 없이 열심히 참여한 분들의 비율도 높았고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전체적으로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모임을 새롭게 시도해서 모집, 운영 측면에서 꽤 만족스러웠던 경험.
- 글, 그림 연재 시리즈 <별게 다 불편해> (현재까지 21명 구독)
- <연옥의 집> 사이트를 만들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글, 그림을 메일로 전송하는 시스템이 썩 맘에 들지 않아서 대체재를 찾다가 어쩌다보니 일이 커져서 웹사이트를 만든 것도 있었다. 좀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에 치여서 좀 늦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1분기 안에 모집부터 연재 종료까지 모두 하겠다는 목표는 이뤄졌다.
- 인스타그램 광고가 반려되어서 이전 시즌에 비해 구독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사이트 연재 특성상 연재 기간 중간에 구독을 시작한 사람도 과월호까지 한꺼번에 읽을 수 있게 되어 굳이 최초 구독 신청 기간 내에 급히 광고를 돌려야겠다는 조급함은 없다. 한 번 반려되니까 광고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다음 게시물은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인스타그램에 연달아서 광고글만 올리면 팔로워 입장에서 피로할 것 같아 텀을 두려는 것도 있다.
어차피 돈 왕창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보니, 수가 많든 적든 나 좋다는 구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다.
광고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진과 함께 올린 본문에서 '돈을 번다' '수입' 등과 같은 표현을 쓴 게 다단계나 투자 사기처럼 비현실적인 성과를 약속한다는 오해를 산 것 같다. 다음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된 글을 이미지 형식으로 제작해서 사진과 함께 같이 올릴 예정.)
결론: 모임을 운영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를 100%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1)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지책을 마련하고, 2)그럼에도 이슈가 생긴다면 어떻게 신속하고 현명하게 해결할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완벽한 기획을 준비하더라도(그런게 어디 있겠냐만) 참가자들의 성향이나 의지 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것 역시 일종의 통제 불가능한 변수 중 하나다. 물론 모임 자체의 문제라면 개선 방법을 고민해야겠지만, 갑자기 참가자들이 빠져나가거나 분위기가 미지근하더라도 '이 기획은 망했어. 다시는 안 해야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각 변수별 통제 가능/불가능 여부를 구분하고 적당한 셀프-다독임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 스트레스 및 운영상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예약 게시물 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공지 등 템플릿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안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너무 모든 것을 예측하고 방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촘촘한 공지글을 적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꼼꼼한 건 좋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읽는 사람이 피로할 수도 있고, 나 역시 너무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확실히 모임으로 월간 수입의 큰 비중을 채워야한다는 부담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훨씬 더 느긋해지고, 나도 운영하는 과정을 더 재밌게 느끼는 것 같다. 모임 기획, 참 즐겁다! |
영감 수집, 미래를 위한 투자
- 을지로 '브레이브 썬샤인'에서 열린 전시에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는 하호하호 작가님과 남수르 작가님 작품을 포함해, 여러 작가님들이 '용기'라는 주제로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작품들을 감상했다.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 개성 역시 다양하구나, 그리고 무엇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든 정답은 없구나. 오히려 나 자신을 더욱 솔직하고 투명하게 드러날수록 더욱 공감이 가는 작품이 탄생하는구나, 등의 생각을 했다.
마음
정신건강
- 12월 중순부터 무기력에 시달려서 느리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비록 외출은 너무 힘들었지만, 침대에서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매 끼니를 요리하는 등의 활력은 있었다. 일어날 수도 없는 수준의 극심한 무기력을 10이라고 하면 이건 한 5에서 7을 오가는 무기력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감정과 건강한 거리를 두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타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무기력한 정도가 약 3 정도로 떨어졌다. 외출 빈도가 이틀에 한 번 정도로 많아졌고 2명 이상의 인간들로 구성된 단체 모임에 기꺼이 나가기도 했다.
- 무기력과 별개로, 지난주에 사흘에 걸쳐 동물병원을 두 번이나 가는 일이 생겨서 마음에 큰 타격을 입었었다. 고양이들이 정말 나이를 많이 먹어서 나랑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죄책감도 들었고, 갑작스러운 병원비 지출과 회복 과정을 지켜보고 챙기는 부담이 늘었다.
스트레스가 컸는지 가만히 앉아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심장이 주저앉고, 가슴이 엄청 빠르게 뛰고(애플워치로 재보니 휴식기 심박수가 60에서 100까지 오가서 부정맥인 줄 알았다), 많이 울었다. 우울증과 아무 상관 없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괴로운게 오랜만이었다.
무기력이 심하지 않은 기간에 간병 기간이 겹쳐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건 그저 시간이 약이다. 일단 당장 내일 예정된 사랑이 발치 수술이 부디 무사히 진행되길 간절히 바란다.
취미, 여가
- 뜨개질 권태기('뜨태기')가 와서 거의 진도가 안 나간다. 팔목, 팔꿈치, 그리고 통장 건강에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띄엄띄엄 바늘을 잡고 있다.
- 영화 <괴물>을 봤다. 8부작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스릴러 미스터리물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잔잔한 다큐멘터리 느낌의 영상미를 끼얹어서 굉장히 이상한 조합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걸 자세히 설명하려고 해서 여운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영화표 값이 아깝지는 않은 작품이었으나, 나는 <아무도 없었다>가 훨씬 더 좋았다.
- 한 달에 한 번 가는 호캉스를 이번달에도 다녀왔다. 재택 알바 휴가를 내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푹 담그고, 온 몸의 때를 박박 밀고, 개운하고 뽀송한 기분으로 침대에 반쯤 누워 넷플릭스를 봤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눈을 돌릴 때마다 '저거 치워야하는데...' '저거 너무 거슬리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했다.
관계
- 정말 우연히, 한 외부 모임에서 만난 멤버들끼리 죽이 잘 맞아서 그날 새벽 네 시까지 수다를 떨고 몇 주 뒤에 또 만나서 새벽까지 놀았다. 나는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2명 이상으로 늘어나면 극도로 피곤해져서 일대일 관계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 경험은 달랐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괜찮고, 안전하고, 다정한 집단이다. 3월 중 같이 여행을 가자는데... 드디어 드라마에서나 보던 '여자인 친구들 집단과 함께 여행가기'라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 대학교 동아리 사람들도 어쩌다보니 1월에 두 번이나 만났다. 분명 그 중 한 번은 한참 무기력하던 시즌에 맞물렸을텐데, '이렇게 누가 나를 불러줘야 집 밖에 나가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나갔던 것 같다. 오후 3시에 만나서 이른 저녁 먹고 파할 줄 알았는데 결국 밤늦게 축구 틀어주는 식당을 찾아 아시안컵 경기까지 봤다. 만날 때마다 똑같은 추억팔이만 계속 하는데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새삼 10년이 넘어가는 세월의 힘을 느낀다.
예전에는 그냥 세월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거니까 그 시간이 쌓이는 게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나의 결혼식 때 와준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세월 속에서 걷는 길이 갈라져서 이젠 결혼 소식은 커녕 안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직까지 이렇게 만나서 노는 게 재밌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드물고 감사할 일이다. - 반려자 R과의 관계는, 뭔가 관계 자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다기보다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다. 난 여전히 모난 사람이고 그게 늘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생명체와 24시간 붙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뾰족함은 많이 다듬어졌다. 그 뾰족함은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콕콕 찔러댔는데, 그 기세가 꺾이고 나니 반려자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조금은 더 온화해질 수 있었다. 아, 결혼이란.
때로는 무기력에 잠겨 굴러다니며 지내느라,
때로는 반짝 찾아오는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느라 무척 바쁘게 살았다.
생산성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시간이 공평하게 밀도가 높았고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오직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로만 모든 수입을 채우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은 덕분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행동한 첫 해, 첫 달이었다.
일
돈 벌려고 하는 일
그래서 작년 하반기에 책을 1천 부 찍고 고양이가 수술을 받아 큰 지출이 연달아 발생했을 때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알바를 알아보거나 첨삭 일을 다시 적극적으로 찾아볼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작업을 의뢰했던 고객이 두 명이나 먼저 연락이 와서 뜻하지 않은 수입이 생겼다.
한 분은 본인 친구의 대학원 입시용 자기소개서를 맡겼고, 다른 한 분은 나와 함께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준비해서 한 회사에 합격을 한 뒤 경력을 쌓아 이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특히 타인에게 나를 추천한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그 추천인의 평판까지 걸리는 건데, 그걸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나를 믿고 다시 찾아주신 게 참 감사했다.
어느 정도 성장의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첨삭과 컨설팅은 하면 할수록 전문성과 노하우가 쌓여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재택 알바로는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긴 하다. 그래도 모객 스트레스라는 단점이 너무도 커서, 재택 알바 수입이 줄지 않는 이상 적극적으로 고려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던 일이 줄어들거나 잘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자.
하지만 나의 의지나 노력과는 관계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첨삭 시장 속으로 다시 뛰어들든 새로운 알바를 찾든 아무튼 그때 가서 고민하자.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나 역시 카톡방에 한 번 공지를 올리면 다시 수정할 수도 없고, 예약 전송도 안 되고, 공지에 대해서만 댓글을 받거나 읽은 사람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잘 됐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없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만족스럽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참가자 5명 중 4명이 당일 불참 통보를 해서... 모임을 위해 대관했던 공간에 지금 나 혼자 앉아서 이 회고를 쓰고 있다. ㅎ 얼결에 쾌적한 임시 작업실이 생긴 건 좋지만, 이 정도로 불참 비율이 (그것도 당일 통보 형식으로) 높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서 좀 허둥거렸다.
일단 못 오는 분들은 대관료 환불이 불가능한 점을 모두 수긍하셨지만, 자신은 올 수 있는데 다른 분들의 불참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모임이 취소 당한 분의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당일 이용 취소는 당연히 대관처에서도 환불을 안 해주기 때문에 환불을 받아 전달드릴 수 있는 돈도 없었고, 그렇다고 본인의 귀책이 아닌 이유로 환불이 어렵다고 말해버리면 나라도 기분이 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을 했냐고? 결말이 궁금하다면 2월에 열 <<어떤 모임>>을 기대해주세요. 후훗... (기승전모임..)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루틴이란 그저 자신의 신체와 생활을 엄격히 통제하며 생산성을 관리해서 얻을 수 있는 성취만 진정한 성공이라고 설파하는 신자유주의 논리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뭔가 루틴에 대한 냉소적인 리액션이나 깨달음도 나오길 바랐는데 그런 케이스는 없었다. 다들 루틴 실천에 긍정적이었고,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보다 자세한 소감은 오늘 밤에 예정된 완주축하회에서 들어봐야 알겠지만.
어차피 돈 왕창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보니, 수가 많든 적든 나 좋다는 구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다.
광고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진과 함께 올린 본문에서 '돈을 번다' '수입' 등과 같은 표현을 쓴 게 다단계나 투자 사기처럼 비현실적인 성과를 약속한다는 오해를 산 것 같다. 다음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된 글을 이미지 형식으로 제작해서 사진과 함께 같이 올릴 예정.)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완벽한 기획을 준비하더라도(그런게 어디 있겠냐만) 참가자들의 성향이나 의지 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것 역시 일종의 통제 불가능한 변수 중 하나다. 물론 모임 자체의 문제라면 개선 방법을 고민해야겠지만, 갑자기 참가자들이 빠져나가거나 분위기가 미지근하더라도 '이 기획은 망했어. 다시는 안 해야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각 변수별 통제 가능/불가능 여부를 구분하고 적당한 셀프-다독임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 스트레스 및 운영상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예약 게시물 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공지 등 템플릿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안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너무 모든 것을 예측하고 방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촘촘한 공지글을 적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꼼꼼한 건 좋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읽는 사람이 피로할 수도 있고, 나 역시 너무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확실히 모임으로 월간 수입의 큰 비중을 채워야한다는 부담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훨씬 더 느긋해지고, 나도 운영하는 과정을 더 재밌게 느끼는 것 같다. 모임 기획, 참 즐겁다!
영감 수집, 미래를 위한 투자
마음
정신건강
스트레스가 컸는지 가만히 앉아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심장이 주저앉고, 가슴이 엄청 빠르게 뛰고(애플워치로 재보니 휴식기 심박수가 60에서 100까지 오가서 부정맥인 줄 알았다), 많이 울었다. 우울증과 아무 상관 없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괴로운게 오랜만이었다.
무기력이 심하지 않은 기간에 간병 기간이 겹쳐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건 그저 시간이 약이다. 일단 당장 내일 예정된 사랑이 발치 수술이 부디 무사히 진행되길 간절히 바란다.
취미, 여가
관계
예전에는 그냥 세월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거니까 그 시간이 쌓이는 게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나의 결혼식 때 와준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세월 속에서 걷는 길이 갈라져서 이젠 결혼 소식은 커녕 안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직까지 이렇게 만나서 노는 게 재밌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드물고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