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의 안부

연옥
2024-10-27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저는 이번 가을을 조금 위태롭게 보내고 있어요.

개인 신변상 저를 괴롭히는 일이 여름에 시작되어 계절이 변하도록 놓아주지 않고 있거든요.

일종의 천재지변 같은 사건이라 그냥 항불안제를 먹으며 마음이 괜찮아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약을 먹으면 기쁜 일에도 그리 기쁨을 느끼지 못하지만 반대로 슬퍼지지도 않아요.

감정의 스펙트럼이 줄어든 건 조금 아쉽지만, 지금처럼 일상조차 견디기 힘들 때에 그런 스펙트럼을 기대하는 건 사치에 가까운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마감이 주어지는 재택 알바도 실패 없이 해내고, 11월 말까지 완성해야 하는 책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으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잘 살아낸 10월,

잘 견뎌낸 10월의 소식을 전합니다.


(숨...막혀...!)


1. 11월 중순, 신간이 나옵니다

표지를 완성하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었지만,

우리 구독자 여러분께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서 참고 참다가 독점 공개합니다. 짠!

'책 만드는 마음' 게시판에서 간간히 작업 소식을 알려드리고 있던 그 신간 맞아요.

제목은 <가족을 갖고 싶다는 착각>입니다.

가정폭력 생존자인 제가 배우자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면서 가졌던 구원의 환상과, 그 환상이 처참히 배반당하며 일어난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다루는 에세이집이에요.

글 외에도 드문드문 저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주제가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첫 책에 비해 가볍게 가져갔어요.

기획과 초고를 완성하는 데에 딱 한 달만 투자했어요. 엄격하게 목차를 짠 다음에 내용을 채우지도 않았고, 분량도 굳이 정해두지 않고 자유롭게 써지는대로 그냥 두었어요.

멋져 보이려 애썼다는 인상을 팍팍 주는 글보다는 자연스럽고, 살짝은 거칠고, 대신 저라는 사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찬가지의 느낌을 주는 삽화도 꽤 자유롭게, 손이 가는 대로 만들어서 넣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넣었고요.

고양이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기획이나 밑그림 없이 손 가는 대로 한 번에 그린 그림들이랍니다.

지금 가제본 제작 중이고, 11월 중하순에 예정된 대전 북페어에서 선보일 계획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11월 초 중으로 예약 판매를 시작할 거예요.

우리 구독자님들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빠르게, 구독자 한정 특전과 함께 소식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책 표지 사진이 꽤 멋지지 않나요? 

저의 배우자인 네일기 작가님과 작년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찍은 빈티지 웨딩 스튜디오 사진인데, 감사하게도 사진 작가님 허락을 받아서 표지로 쓸 수 있게 되었어요. 

부디 독자분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길.


아니 근데, '-라는 착각' 내지는 '-하는 착각'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유행처럼 쏟아지고 있더라고요...?

책 제목을 정하고 뒤늦게 알게 되어서 부랴부랴 검색을 해봤는데 다행히 100% 겹치는 제목은 없지만... 뭐랄까... 성의 없이 유행을 좇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거시기했습니다.

제 책의 제목은 착각 시리즈의 유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물론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지만요. 호호)



2. 그새 북페어를 세 군데나 다녀왔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모든 북페어가 셀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어디든 책을 알리고 독자를 만날 자리가 하나라도 더 생기면 좋기는 하죠.

하지만 올 하반기에 참석했던 몇 개의 북페어는 책에 대한 관심이나 아주 작은 구매 의사도 없는 방문객들이 대다수였어서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졌답니다.

책을 살 생각을 가진 사람만 북페어에 와야한다는 건 아니예요. 애초부터 그걸 물리적으로 강제하는 것부터 불가능할 뿐더러 그렇게 문턱이 높은 행사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제가 이 글에 썼듯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여기에 왔고 괜찮은 책에 돈을 쓸 의사가 있어' 라는 마음을 가진 방문객과 '나들이 나왔는데 뭔가 시끌벅적하네, 구경이나 해볼까?' 와 같은 방문객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느껴져요.

그리고 행사 장소, 홍보 정도, 인지도, 순전한 운 등에 따라 후자가 유독 많거나 적은 행사들이 확실히 갈립니다.

꼭 주최 측의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행사를 만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성공적인 행사 안에서 저의 책이 경쟁력이 부족해서 혼자 궁시렁거리는 소리일 수도 있어요. 해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당연히 영향이 있을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책을 만들어도 될까?' 하는 고민에 희망보다는 절망을 얹는 경험이 조금 슬펐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어요.


비슷한 취지의 글을 인스타그램에 썼을 때 '북페어를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하자'고 조언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한결 낫더라고요.

무조건 한 권 더, 한 권 더 팔아야만 성공적인 북페어가 아닐 수도 있...지는 않은 것 같네요. 많이 팔면 그건 분명 성공적인 북페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팔리지 않는 북페어를 실패라고 치부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일단 제가 상업적으로 승부를 보려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순수 예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성 출판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에서 갈팡질팡하니까 마음이 더 힘든 것 같더라고요.

저는 저와 비슷한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 내지는 동료 예술가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싶은 걸요. 돈은 임금노동으로 따로 벌고요. 그게 정말 다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상, 많이 팔리지 않아도 그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과정에 의의를 두고 적은 수의 동료를 만나 오순도순 행복해하는 게 맞겠죠.


상황을 맘대로 제어할 수 없으니 이렇게 마음이라도 다르게 먹어보려 합니다.

뜻밖의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우연한 동료와 조우하기도 하는 모험. 북페어는 그런 모험이라고 생각하렵니다.


그런 의미에서 11월에 예정된 대전 북페어는 부디 즐거운 모험이 되길 바라요.

(대전 북페어는 세부 사항이 나오면 따로 소식을 알릴게요.)


3. 뜬금없지만... 여러분은 '일상'을 뭐라고 정의하시나요?

(지난주에 다녀온 천리포 수목원에서 찍은, 이름 모를 꽃 사진이에요. 꽃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나이가 된 것인가...)


앞서 고백한 것처럼 요즘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그러는 와중에도 맛있는 거 하나 먹으면 반짝 기분이 좋아지고, 귀여운 고양이 콧잔등에 뽀뽀를 하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풀리기도 해요.

때로는 그런 시간이 평소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하고, 어쩔 때에는 하루종일 마음이 바닥을 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기복이 확실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일기를 쓰려 책상 앞에 앉으면, 하루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오늘은 좋은 날이었나? 별로였나?

마찬가지로 감정을 기록하는 어플도 쓰고 있는데 하루에 딱 한 개의 감정 밖에 기록하지 못해서 난감해요.

오늘 난 화가 난 하루를 보냈나? 우울하기도 했는데? 잠깐이지만 행복할 때도 있었고.

아무리 인간이, 삶이 입체적이라지만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자주 오가다보니 혼란스럽습니다.

지난 몇 달이나 몇 년을 돌아보면 명확하게 '대체로 이러저러했다'라고 정의할 자신이 있는데 지난 두 달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즐거웠는지, 슬펐는지, 행복했는지, 절망스러웠는지...

여러분도 그렇게 냉탕과 온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일상을 보내본 적이 있나요? 그 시간을 돌아봤을 때 무슨 마음이 드는지, 그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하루를 보낸 뒤에는 그 하루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해요.

질문부터 좀 두서가 없네요. 요즘 저의 일상처럼요.


여러분께서는 장기하가 자랑하듯 '별 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랄게요. 별 일 많게, 온갖 걱정을 달고 사니까 정신도 없고 기력도 없네요.


4. 기타 요즘의 삶과 고민거리 (이렇게 갑자기?)
  • 기질-성격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방어 기제 탐구, 그리고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수업을 듣고 있어요. 몸과 마음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지를 알고, 불편한 사람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배워야겠더라고요. 
  • 영상번역 입문 강의는 순항 중입니다. 겨우 5분 짜리 영상 번역하는 데에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것만 빼면 번역가로서의 미래가 밝아보입니다. 하하. 상업영상 번역을 조금 맛본 적 있다고 자만했는데 의외로 어린이 만화 번역 과제에서 완전히 막혀버렸어요... 미묘한 뉘앙스나 언어 유희 번역이 특히 참 어렵네요. 그래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다보면 어떻게 되겠죠? 목표는 1년 안에 영상 번역으로만 월 100만원 이상 벌어보는 거예요.
  • 통영으로 이주할 날짜를 조금 당겨야하나 고민중입니다. 서울에서 돈을 모은 다음 이주를 할 계획이었는데, 서울에서의 삶이 한없이 비싸지다보니 차라리 일찍 이사를 가서 돈을 모으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12살이 넘어가는 고양이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장거리 이사를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반면 기후 위기 속에서 과연 남쪽으로 이사를 가는 게 현명할지(해수면이 생각보다 빠르게 상승하면... 우리 집이 물에 잠길 수도 있지 않을까?), 배우자의 일자리 이슈, 정신건강 관리에 필요한 인프라 부족, 그리고 떠날 생각 하니까 갑자기 아쉬워지는 서울의 인프라와 놀거리(...) 등을 생각하면 또 발목이 붙잡히기도 하네요.
    모르겠어요 여러분. 저 그냥 확 내년에 가버릴지도 몰라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안부를 전할 그 날까지 안온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여러분의 안부도 궁금해요. 방명록에서 기다릴게요! (댓글도 환영해요.)


----------------------------------------------- 

©연옥의 집. All rights reserved.

친구에게 구독 권하기

구독 해지하기

*위 버튼을 눌러 채널 홈으로 이동한 뒤 '채널 차단'을 눌러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