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2-6화] 얼마까지 벌고, 어디까지 잃어봤나요?

1. '아니, 이렇게도 돈을 번다고?’ 기대 없이 덥석 받아본 돈


대학생 시절에 난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쳤었다. 꽹과리 연주자는 맨 앞에서 다른 연주자들을 이끄는 지휘자이자 무대의 대장인데, 덕분에 야외에서 공연을 할 때 열성적인 팬(?)들로부터 쏟아지는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그 관심에는 금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여름에 농활을 가면 악기를 치며 집집마다 복을 빌어주는 ‘지신밟기’라는 행사를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온 동네 어르신들이 뛰쳐나와서 광란의 춤판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몸빼바지 자락을 현란하게 펄럭거리며 우렁차게 추임새를 넣는 관객과 하나되다보면 싸이의 흠뻑쇼가 부럽지 않았다. 그러다가 꼭 몇 분이 춤을 추며 슬렁슬렁 다가오다가 머리에 쓴 상모 벙거지에 무언가 콱 쑤셔넣는다. “이렇게 재롱을 떠는데 용돈을 줘야지!” 


예의 바른 한국인은 두 번쯤 거절을 해야겠지만 난 악기를 치느라 손을 쓸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깊은 목례와 함께 넙죽 받았다. 거절하지 않은 건 정말 그 이유 뿐이다.


그렇게 해가 떨어질 때까지 돈을 잔뜩 먹은 주크박스처럼 미친듯이 곡을 뽑아내다가 숙소로 돌아오면, 몸은 피곤해도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이참에 꽹과리 채를 더 고급 모델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악기를 집어던지고 땀에 쩔은 벙거지와 흑포를 벗어 정리하는데... 어?

아침에 썼을때와 마찬가지로 휑한 챙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야, 혹시 아까 마당에서 연주할 때 바닥에 떨어진 돈 못봤어?”

허둥대는 나의 질문에 옆에 널부러져 있던 후배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건 제가 챙겼습니다만. 공금이니까요.”

와, 그때만큼 총무가 얄미운 적이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 툴툴거릴지언정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광화문인가, 인사동인가에서 공연 알바를 뛰었을 때에도 한 아저씨가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며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준 적이 있었다. 이 역시 당연히 공금으로 돌아가 푸짐한 회식비가 되어주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지금이라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근데 2019년에도 OB들을 모아서 야외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딱 봐도 학생 얼굴이 아니니까 덜 기특해서 그랬나. 아니면 그새 경제가 많이 어려워져서 그런 걸까.


그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쁘다며 용돈을 주겠다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던 시절이 그립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용돈을 줘야하는 나이일지도…)


2. '이렇게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다고?’ 남에게 억울하게 뜯겨본 돈


말로만 듣던 중고나라 사기가 내 얘기가 되본 적이 있다. 절판된 책을 구하려고 검색을 했는데 기적처럼 누군가가 그 책을 팔고 있는게 아닌가? 실물 사진을 부탁하니 본인 아이디를 적은 포스트잇과 함께 그 자리에서 찍어 보내주길래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선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선입금을 했고 판매자는 귀신같이 사라졌다. ‘책이 있다고 했지, 너한테 보내주겠다고는 안 했음.’ 사진이 이런 의미라는 걸 일찍 알았더라면.


당시 물가로는 뼈해장국 아홉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었기에, 가난하고 분노가 많았던 대학생 연옥은 자필로 쓴 고소장과 함께 씩씩거리며 경찰서를 찾았다. 동네 파출소도 아닌 커다란 경찰서를 찾은 건 처음이라 살짝 쫄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안내를 받아 찾아간 디지털범죄 관련 부서에 발을 들이고는  쫄림보다는 절망이 앞섰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담당자의 다크서클과 책상에 쌓여있는 산더미같은 서류의 높이를 보아하니 소액 사기에 불과한 나의 사건은 아마 눈길을 받는 데에 최소 50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 순간에 포기하고 집에 돌아갔다면 돈을 돌려받을 확률이 달라졌을까? 사립탐정을 고용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0%에 가까웠을 것이다. 난 0.1%의 확률이라도 붙잡고 싶을 정도로 화가 단단히 나 있었고 과외비가 들어오는 날은 한참이나 멀었다. 그래서 꿋꿋하게 남아 차례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마주앉은 형사님께 나의 고소장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덕분에, 나에게 배정된 형사님이 놀라울 정도로 사명감이 투철하고 능력이 하늘을 찌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형사님은 날 차분히 달래고 내가 뽑아온 사기꾼의 계좌번호를 살피더니, 같은 명의의 계좌에 대해 사기 신고가 들어온게 있다며 해당 사건과 관련해 협조하고 있던 다른 경찰서에 몇 번의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꽤나 격분한 것 같은 누군가와 마지막 통화를 마친 그는 내게 계좌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사기당했던 금액이 고스란히 입금되어 있었다.


알고보니 나에게 사기를 친 놈은 1년 넘게 몇백만 원 어치 사기 피해 신고가 누적된 상습범이었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을 개설하고 지인의 계좌를 빌려 쓰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라는 걸 듣고는 까무라칠 뻔했다. 될성부를 떡잎은 어디서든 행보가 참 비범하구나… 그런 그의 부모가 뒤늦게 자식의 범죄 사실을 알고 경찰서로 끌고온 덕분에 조사가 이루어지는 중이었고, 이 떡잎이 부모에게 걸리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친 사기 상대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타이밍도, 담당 형사 배정도 모두 말이 안 될 정도로 운이 좋았다. 


때때로 오지게 재수가 없는 날이 찾아오면 내게 주어진 운을 저 날 다 써버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뼈해장국 아홉 그릇을 덜 먹고 운을 아껴뒀다가 이자까지 붙여서 로또를 맞았으면 더 좋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