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덕업일치의 환상, 난 좀 불편하던데 (1)

연옥
2024-02-08


안녕하세요 여러분! 드디어 첫 번째 원고로 인사드리네요. 사실 지난 며칠간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서 ‘과연 글을 쓸 힘이 날까…’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요. 

어제 띄워드린 공지에 바로 달린 댓글을 보면서 거짓말처럼 힘이 솟았답니다. 

사실 댓글이 없었어도 창작자에게 역경이란 곧 글감이자 콘텐츠이기 때문에 또 거기에 걸맞은 좋은 글이 나왔을 것 같지만, 그런 글을 쓸 때 너무 괴롭거든요. 여러분 덕분에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의 주제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지 않기로 했다”잖아요. 분명 이 주제에 흥미를 느껴서 구독 신청을 하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있다가 ‘어? 이 사람은 왜 나랑 반대 방향으로 가지?’라고 의아함을 느낀 분들, 혹은 이미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는 분들, 내지는 지금의 저처럼 자아실현과 임금 노동을 엄격히 분리하며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만나고 싶어 찾아온 분들이 있겠죠? 

이 넓은 스펙트럼의 독자층을 모두 만족시키는 글을 계속 찍어낼 수는 없겠지만 딱 하나 자신 있기는 해요. 

바로 여러분들이 ‘왜?’를 궁금해하실 거란 사실이요. 

특히 저의 (흑)역사를 꾸준히 지켜보신 분이라면 제가 작년 한 해 동안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든 수익으로 연결시키려 안간힘을 썼고, 도저히 그럴 수 없을 때에도 ‘오직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기 싫어!’라고 외치며 두 달 동안 자발적 무업 상태에 돌입했다는 걸 아실 거예요.


꽤나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사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도 몰랐고, 그때와 지금의 나 사이에 어떤 변화가 무슨 이유로 일어났는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저 역시도 제가 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지 않기로 했는지 궁금해진 거죠.


그것 참 잘 되었네요. 독자분들에 더해 심지어 작가마저도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는 글이라면, 그 질문을 슬로건으로 내건 연재 시리즈의 첫 글이 될 자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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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왜 직업으로 하려고 해. 하지 마. 그거 저주야.”


때는 바야흐로 약 10년 전, 한반도 남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새벽 네 시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비실거리던 나의 귀를 한 문장이 강타했다. 나보다 더 술에 취해있던 동아리원 한 명이 졸업을 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농악이 너무 좋으니 이걸 꾸준히 배우면 어떨지 고민 중이라 중얼거린 게 발단이었다. 전수관에 계신 사부님들 중 어렸을 때부터 연희를 배우고 전공을 한 분들도 계셨지만, 우리처럼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농악을 접한 뒤 졸업 후 전수관에 들어와서 업으로 삼은 분들도 없지 않았었다. 

그 친구도 그걸 알고 있어 조언을 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모르겠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진한 막걸리 냄새가 새벽 공기와 눅진히 섞이던 그날 밤, 다음날 아침 일곱 시부터 장구를 치며 상모를 돌려야 하니 제발 자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 말고는 기억이 몽롱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날 밤, 누군가 후회 어린 조언을 내뱉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려고 하지 마라.”


‘덕업일치’.

단군 이래 먹고 살 방법이 가장 다채로워졌다는 요즘, 예전처럼 오직 월급만을 바라보며 30년 간 평생직장을 다니는 걸 꿈꾸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출근이 기다려지고 일을 하는 모든 순간이 자아실현 그 자체인 직업을 갖는 것, 혹은 세상에 없다면 직접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단다. 

취미 삼아 끄적였던 만화를 수만 명의 팔로워들이 읽어주면서 광고가 들어오고, 그저 슬라임 조물딱거리는 걸 좋아했을 뿐인데 어느새 슬라임 가게 사장이 되고, 여행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 찍기 시작한 영상을 돈을 주고 시청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렇게 행복하게 일하면서 평범한 월급이나 그 이상을 벌어 틱톡, 릴스, 혹은 유튜브에 수익을 인증하고 한강뷰 아파트의 랜선 투어 영상을 찍는 삶만큼이나 대단한 ‘플렉스’가 없다.


근데 이게 사실이라면 나는 왜 10년 전에 덕업일치가 곧 저주라는 끔찍한 말을 들었던 걸까.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 흐르기 전이라서 그런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그때 그 시절에는 아마 틱톡이나 전업 콘텐츠 크리에이터 같은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긴 하다.)

아니면 전통연희는 콘텐츠로 떡상할 만큼의 화제성을 갖추지 못해서 별로라는 얘기였나? (하지만 여러분… 상모 돌리면서 자반을 뒤집는 소고수가 얼마나 멋진데요. 대한민국 홍보 영상마다 그 장면이 절대 안 빠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그 말을 했던 사부님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대신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보겠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일의 종류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다.

몸이 개운해져서, 내면에 잠들어있는 창조성을 일깨워주어서, 귀여워서, 웃겨서.


하지만 ‘돈이 되는 일’은 이보다 비교적 좁게 정의하는 게 가능하다.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치를 전해주어서.

그래서 돈을 줘서라도 이용을 계속하거나, 당장 지갑을 열지 않더라도 그 일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리고 더 많은 주목을 받을수록 이와 연계된 잠재적 소비의 규모 역시 어느 정도 비례할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 주목받는 경험을 돈을 주고 빌리고 싶어 하는 수요가 발생해서.


물론 이는 지나친 비약일 수 있겠지만, 전통적인 임금 노동의 모습을 벗어난 최신식 덕업일치의 유형 - 아마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일 거다 - 의 경우에는 나의 정의가 어느 정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내가 한때 잠시 발가락을 담갔던 인스타툰 시장의 경우(인스타그램 내에서의 창작 및 소비 모두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계속 읽어보자), 시원한 웃음, 감동, 귀여움, 혹은 유용한 노하우 등과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 안에서 유독 더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귀엽거나 유용한 소재를 다루고, 이를 잘 부각하는 콘텐츠에 트래픽이 몰린다. 

자연스럽게 팔로워들이 많아지면서 콘텐츠를 올릴 때마다 수천 개, 수만 개의 좋아요와 조회수를 기록한다.

그러자 수천 명, 수만 명에게 자신의 브랜드 혹은 상품을 알리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광고 제의를 해온다. 당연히 이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를 제안한다.

띵- 통장에 광고비가 꽂힌다.

와! 덕질과 직업이 합일을 이루고, 서비스와 재화가 거래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아름다운 합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예시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라는 문장 중 ‘돈을 번다’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돈을 벌려면 결국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그저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역시 아니다. 이건 그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다. 핸드폰으로 영상 몇 개 찍어서 억대 부자가 되었다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감탄할 단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보장 못한다. 

나의 지극히 사적인 흥미와, 경제적으로 유의미할 정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만족시켜야 하는 상업적인 요건 사이에는 거대한 괴리가 끼어들어있다. 

그 괴리의 폭과 깊이는 그저 ‘와! 좋아하는 일로 돈 벌어서 너무 즐거워! 인생 엄청 쉽네!’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나풀나풀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자칫하면 가랑이가 찢어져 죽거나 괴리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자.


그 괴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실제로 거기에 집어삼켜질 뻔했던 경험까지 마저 쓰고 싶었는데, 글이 이미 3천6백 자를 넘어가서 부득이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급공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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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린 뒤에 갑자기 뿌듯해져서(?) 작업 현장 항공샷을 찍어봤어요.

제 지우개 귀엽지 않나요. 아직은 괜찮은데, 점점 지우개가 작아지고 있어서 그림 없어질까봐 겁나요..

(그렇다고 그냥 밋밋한 지우개는 쓰는 맛이 없고요. 세상은 넓고 고민할라면 할 거리가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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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그냥 마무리하기 아쉬워서, 글과 그림에서 다룬 주제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관련이 없지만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아무말대잔치+콘텐츠 추천 코너입니다.

오늘은 너무 오랜만에 긴 글과 그림 작업을 하느라 진이 다 빠져서 알찬 정보 나눔은 힘들고, 대신 본문에서 언급된 전수관 사부님들의 공연 영상 하나 놓고 갑니다(...? 너무 뜬금없죠? 예 이 시리즈 전개가 좀 이렇습니다...) 이런 공연 영상을 여러분들이 찾아볼 확률은 0에 수렴할테니, 이 기회에 한 번 평소에 전혀 못 보던 콘텐츠도 보고 좋죠 뭐. 예.

차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시라고 할 수는 없어서, 신나고 빠른 파트부터 보실 수 있게 영상 퍼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상모 돌릴 줄 아냐고요? 당연하죠. 헤헤. 지금은 많이 까먹었겠지만 누가 돈 준다고 하면 다시 기억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물론 상모 돌려보라고 돈 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이렇게 글쟁이로 살아보려 노력 중이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뜬금없는 마무리까지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 목요일에 뵐게요!

참,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몸도 마음도 안전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라요. 💝


오늘의 글과 그림은 어떠셨나요?
댓글로 남겨주시는 소감과 응원이 창작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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