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이걸 쓰고 있는 지금, 저는 당장 이번주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는 북페어에서 선보일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야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정작 이걸 쓰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초소형 네컷만화 zine을 만들기로 했는데 막상 할 때가 되니까 너무 귀찮네요. 벌써부터 3일 동안 하루에 7시간씩 행사장을 지킬 생각을 하니 피로가 몰려오고요. 아. 아무튼.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의외로 긍정적인 효과가 함께 따라오기도 해요. 바로 그 일을 피하기 위해 그나마 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됩니다. ‘아니 설마, 그게 바로 이 글을 쓰는 일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면 반쯤 맞는 말입니다. 아래에 이어질 원고는 이 인트로를 쓰기 한참 전인 지난 주말에 미리 써둔 거거든요. 하지만 zine을 만드는 대신 세이브 원고를 하나 더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켠 건 맞아요. 제가 다음주에 영국으로 출국을 해서 보름 후에 돌아오는데 거기선… 진짜로 글을 더 쓰기 싫어질 것 같아 세이브 원고가 꼭 필요하거든요. 허허. 그나저나 ‘(조금 더/덜) 하기 싫은 일’ 하니까 이걸 쓰기 전에 막 마무리를 한 재택 아르바이트 얘기를 안할 수 없네요. 이 아르바이트야말로 돈벌이 말고는 별다른 목적이 없는 순수한(?) 임금 노동이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늘 안 할 수 있으면 안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오늘의 원고 주제이기도 하고요. 휴, 자연스러운 연결에 성공한 것 같군요. 그럼 어서 글을 읽어봅시다. |

Q. 다음 문장 중 밑줄친 단어의 올바른 의미를 고르시오. (10점)
명절 때 만난 친척: “연옥아, 요즘 일은 잘 되어가니?”
1. 입시, 취업 컨설팅
2. 재택 아르바이트
3. 1인 출판사 운영
4. 모임 기획
5. 창작 활동
힌트를 주자면 정답은 딱 하나다.
(뭐? 다섯 개 다 연옥이 하는 일 맞지 않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명절때만 만나는 평균적인 친척의 상식과 기대치를 고려해서 다시 한 번 문제를 풀어보자. 정답은 뭘까?
그렇다. 정답은 1번이다. 퇴사 이후 가장 오랫동안 해온 일이자 한때는 월급에 준하는 수준의 수입을 냈었고, 근무 시간 역시 일반적인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심지어 사무실도 구해서 출퇴근을 했었던 컨설팅업. 이것도 번듯한 직장에 비하면 ‘진짜 직업’의 조건을 만족하기에 조금 부족하지만 거기에 제일 가깝기는 하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나는 ‘컨설턴트’고 거기에 대해 나도 딱히 불만은 없다. 컨설턴트라는 직함이 좀 멋지게 들리는 것 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직업적 정체성과 그 직함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년에 두 번 만나는 분들과는 그저 하하호호 웃으며 덕담만 나누다가 헤어지고 싶다. 일이 얼마나 잘 되어가는지, 나의 고객들이 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앞으로 사업이 번창할 일만 남았다며 떡국과 과일을 나눠먹다보면 어느덧 귀가할 시간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큰이모에게도 내가 출판사를 운영한다든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말하지 않았다.
이모 아들은 치과의사다. 심지어 며느리도 치과의사다. (이건 솔직히 너무한 스펙이다.) 그걸 이모가 나에게 막 자랑한다든가 나와 이모 아들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아도 괜히 내가 먼저 움츠러드는 거에 가깝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그 어떠한 부연 설명도 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개를 들은 상대방이 감탄과 부러움을 담은 말들을 한참이나 더 뱉어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직업’은 그렇지 않다. 그게 뭔지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간단한 질문을 한다. “출판사요? 아 그럼 막 교보문고에 가면 그 출판사 책을 살 수 있나요?” “작가요? 전업 작가인 건가요?” 난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지만 거기에 시원하게 만족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말꼬리가 길어지고 얼굴은 붉어지고, 상대방은 머리를 긁적이며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자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한 단어로 명쾌하게 설명이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쉽게 건너뛸 수 있는 수고로움이다.
살면서 그걸 겪을 일이 없었던 사람에게 그게 어떤 기분인지 설명하는 건 두 배로 수고롭기에, 난 내가 가진 여러 명함 중 가장 그럴싸한 것만 보여준다. 그 뒤에 숨긴 다른 명함들을 다 합쳐봤자 치과의사를 이길 수는 없다. 사회적인 지위, 존경의 정도, 명예, 소득의 측면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아, 물론 당연히 그 의미에서도 이길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애써 눈을 감고 무시하도록 하자.) 그 직업을 설명하는 데에 필요한 단어의 수.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을 받을 가능성의 크기. 이 척도를 숫자로 환산했을 때 치과의사는 0에 수렴하고 나는 무한에 수렴한다는 측면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근데 여기까지는 사실 내가 지금껏 책에서도, 팟캐스트에서도 숱하게 궁시렁거렸던 얘기라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이모에게 아들 내외가 치과의사라는 사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이젠 자랑거리로 인식되지도 않게 된 것처럼, 나에게도 내 직업을 설명하려면 2박 3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전만큼 번거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의 직업 중 ‘아르바이트’가 추가되면서 무언가 달라졌다. 동시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는 임시직이다. 그 누구도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를 듣고 퇴직금, 상여금, 승진, 이직 등을 함께 떠올리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는 언제든 시작했다가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때로는 나의 의사와 관계 없이 또 다른 임시직 근로자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자리라고 인식된다. 일의 종류에 따라 숙련된 기술이나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아르바이트 경험을 정규직 경력처럼 가치 있는 시간으로 치는 경우는 전문직을 제외하면 드물다. 채용 시장만 그렇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근로자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일을 오래 해도 직급도 능력도 늘 제자리인 기분이다.
어차피 돈만 벌려고 하는 일인데 뭐 어때. 임금 노동과 예술 활동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멋진 계획의 일부니까 다 괜찮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사원 시절처럼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안 괜찮은 건 아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무척 고무적인 성과이므로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 여기에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벌써 2천 자 넘게 썼고, 이걸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13분이다. 오늘도 분량 조절과 정시 취침 모두 실패.)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100점짜리 완벽한 행복은 없고, 늘 만점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작은 불행이 마냥 작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너무 우울해지기 전에 서둘러 아르바이트의 장점부터 나열해보겠다. 먼저 당연하게도 고정 수입을 벌어다준다. 내가 매번 고객을 찾아나서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던 자영업과 달리 누군가 나를 고용해서 정해진 임금을 준다! 이 기분이 너무 그리워서 고등학교 급식실 청소 알바를 했던 건데, 이 재택 아르바이트는 컴퓨터로 데이터를 검수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자처럼 행주질로 인한 팔꿈치 부상이나 출퇴근이라는 무시무시한 위험 요소에 노출되지 않는다. 일일 근무 시간이 평균 3시간 정도로 퇴근 후 원하는 예술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도 허용된다. (이런 귀한 자원을 늘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특성상 고정된 계약 기간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는데, 이젠 차라리 무기한 일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게 될 정도로 무척 만족스러운 조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아르바이트의 대전제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일을 10년을 한다고 해서 내가 전에 모르던 새로운 걸 배우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약 80페이지 분량의 매뉴얼을 숙지해야만 할 수 있는 업무이므로 일체의 숙련도를 요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고, 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받아먹는 과정에서 나름의 짬과 일머리 역시 생길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업무 범위가 넓어지거나 거기에 걸맞는 책임이 커질 일이 없는 건 확실하다. 시간이 쌓여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는 기분은 마냥 유쾌하지 않다. 경력에 비례해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굳이 나를 비교하지 않아도, 제자리뛰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매일 3시간 동안 똑같은 화면을 응시하며 똑같은 리듬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그 생각을 잊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런 임금 노동의 단점을 감수하며,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해보려는 예술 활동 성과를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제보다 한 글자 더 쓰고 한 장 더 그릴 수는 있지만 정확히 내가 어디쯤 왔는지, 이 방향이 맞는 건지 알기 어려운 건 아르바이트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는 한 달에 한 번 들어오는 월급의 형태로 성과를 환산해 보여준다. 예술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예술을 통해 벌어들인 경제적 성과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이런 이중 생활을 택한 만큼 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고, 구독료로 얼마나 벌었는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난 그냥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나답게,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예술을 하고 싶은데 지금 이렇게 적으면서도 이 말이 허망한 먼지처럼 느껴진다. (그새 2시 42분이 됐다. 졸려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르바이트가 정해진 시간 동안 런닝머신 위에서 뛰는 거라면, 예술은 거대한 숲속에서 길을 잃어 걷고 걸어도 계속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둘 다 계속 발을 움직이고 있지만 결국 제자리에 붙박혀있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한 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이 직업에 대해, 예술에 대해 물어온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도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래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돈만 주구장창 벌다가 예술로만 돈을 벌려고 애쓰고, 그러다가 이렇게 임금 노동과 예술 활동을 완전히 분리시키게 되기까지 나의 세상이 수만 번 무너지고 새롭게 태어났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같은 저주를 변주하는 나 자신을 애써 모른척하고 있는 걸까봐 두렵다.






안 그래도 1)같은 공간에 n시간 이상 갇혀있는 것 2)사람들과 대면으로 소통하는 것 3)그런데 그 일에 수입이 달려있다는 부담감 등에 취약한 저에겐 북페어 참가란 스불재(=스스로 불러운 재앙)에 가까운데, 이번 북페어는 유독 준비 과정에서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많았어서 그런가... 평소보다 가기 싫은 마음이 커도 너무 크네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가야죠. 그러니 많이 놀러오셔요. 북페어 참가 관련 소식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제가 일일 인스타그램 사용 시간을 30분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대신 X(구 트위터) 체류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요.
오늘은 거기에서 제가 주워온 각종 짤들을 공유합니다.




(예전에는 태현이처럼 사는 게 멋진 줄 알았는데 요즘은 그냥 기훈이가 되고 싶네요.)


(아아아악!!!!)
번잡한 저의 정신상태를 잘 보여주는 구성인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면 다음주 원고를 읽으실 즈음에 저는 비행기 안이거나 막 영국에 도착한 직후겠네요. 과연 그 전에 세이브 원고를 써서 올려둘지 아니면 비행기 안에서 허겁지겁 쓰고 있을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
아무튼 다음주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글과 그림은 어떠셨나요?댓글로 남겨주시는 소감과 응원이 창작에 큰 힘이 됩니다! |
-----------------------------------------------
©연옥의 집. All rights reserved.
친구에게 구독 권하기
구독 해지하기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걸 쓰고 있는 지금, 저는 당장 이번주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는 북페어에서 선보일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야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정작 이걸 쓰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초소형 네컷만화 zine을 만들기로 했는데 막상 할 때가 되니까 너무 귀찮네요. 벌써부터 3일 동안 하루에 7시간씩 행사장을 지킬 생각을 하니 피로가 몰려오고요. 아. 아무튼.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의외로 긍정적인 효과가 함께 따라오기도 해요. 바로 그 일을 피하기 위해 그나마 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됩니다. ‘아니 설마, 그게 바로 이 글을 쓰는 일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면 반쯤 맞는 말입니다. 아래에 이어질 원고는 이 인트로를 쓰기 한참 전인 지난 주말에 미리 써둔 거거든요. 하지만 zine을 만드는 대신 세이브 원고를 하나 더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켠 건 맞아요. 제가 다음주에 영국으로 출국을 해서 보름 후에 돌아오는데 거기선… 진짜로 글을 더 쓰기 싫어질 것 같아 세이브 원고가 꼭 필요하거든요. 허허.
그나저나 ‘(조금 더/덜) 하기 싫은 일’ 하니까 이걸 쓰기 전에 막 마무리를 한 재택 아르바이트 얘기를 안할 수 없네요. 이 아르바이트야말로 돈벌이 말고는 별다른 목적이 없는 순수한(?) 임금 노동이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늘 안 할 수 있으면 안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오늘의 원고 주제이기도 하고요.
휴, 자연스러운 연결에 성공한 것 같군요. 그럼 어서 글을 읽어봅시다.
Q. 다음 문장 중 밑줄친 단어의 올바른 의미를 고르시오. (10점)
명절 때 만난 친척: “연옥아, 요즘 일은 잘 되어가니?”
1. 입시, 취업 컨설팅
2. 재택 아르바이트
3. 1인 출판사 운영
4. 모임 기획
5. 창작 활동
힌트를 주자면 정답은 딱 하나다.
(뭐? 다섯 개 다 연옥이 하는 일 맞지 않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명절때만 만나는 평균적인 친척의 상식과 기대치를 고려해서 다시 한 번 문제를 풀어보자. 정답은 뭘까?
그렇다. 정답은 1번이다. 퇴사 이후 가장 오랫동안 해온 일이자 한때는 월급에 준하는 수준의 수입을 냈었고, 근무 시간 역시 일반적인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심지어 사무실도 구해서 출퇴근을 했었던 컨설팅업. 이것도 번듯한 직장에 비하면 ‘진짜 직업’의 조건을 만족하기에 조금 부족하지만 거기에 제일 가깝기는 하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나는 ‘컨설턴트’고 거기에 대해 나도 딱히 불만은 없다. 컨설턴트라는 직함이 좀 멋지게 들리는 것 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직업적 정체성과 그 직함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년에 두 번 만나는 분들과는 그저 하하호호 웃으며 덕담만 나누다가 헤어지고 싶다. 일이 얼마나 잘 되어가는지, 나의 고객들이 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앞으로 사업이 번창할 일만 남았다며 떡국과 과일을 나눠먹다보면 어느덧 귀가할 시간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큰이모에게도 내가 출판사를 운영한다든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말하지 않았다.
이모 아들은 치과의사다. 심지어 며느리도 치과의사다. (이건 솔직히 너무한 스펙이다.) 그걸 이모가 나에게 막 자랑한다든가 나와 이모 아들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아도 괜히 내가 먼저 움츠러드는 거에 가깝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그 어떠한 부연 설명도 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개를 들은 상대방이 감탄과 부러움을 담은 말들을 한참이나 더 뱉어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직업’은 그렇지 않다. 그게 뭔지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간단한 질문을 한다. “출판사요? 아 그럼 막 교보문고에 가면 그 출판사 책을 살 수 있나요?” “작가요? 전업 작가인 건가요?” 난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지만 거기에 시원하게 만족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말꼬리가 길어지고 얼굴은 붉어지고, 상대방은 머리를 긁적이며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자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한 단어로 명쾌하게 설명이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쉽게 건너뛸 수 있는 수고로움이다.
살면서 그걸 겪을 일이 없었던 사람에게 그게 어떤 기분인지 설명하는 건 두 배로 수고롭기에, 난 내가 가진 여러 명함 중 가장 그럴싸한 것만 보여준다. 그 뒤에 숨긴 다른 명함들을 다 합쳐봤자 치과의사를 이길 수는 없다. 사회적인 지위, 존경의 정도, 명예, 소득의 측면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아, 물론 당연히 그 의미에서도 이길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애써 눈을 감고 무시하도록 하자.) 그 직업을 설명하는 데에 필요한 단어의 수.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을 받을 가능성의 크기. 이 척도를 숫자로 환산했을 때 치과의사는 0에 수렴하고 나는 무한에 수렴한다는 측면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근데 여기까지는 사실 내가 지금껏 책에서도, 팟캐스트에서도 숱하게 궁시렁거렸던 얘기라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이모에게 아들 내외가 치과의사라는 사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이젠 자랑거리로 인식되지도 않게 된 것처럼, 나에게도 내 직업을 설명하려면 2박 3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전만큼 번거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의 직업 중 ‘아르바이트’가 추가되면서 무언가 달라졌다. 동시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는 임시직이다. 그 누구도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를 듣고 퇴직금, 상여금, 승진, 이직 등을 함께 떠올리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는 언제든 시작했다가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때로는 나의 의사와 관계 없이 또 다른 임시직 근로자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자리라고 인식된다. 일의 종류에 따라 숙련된 기술이나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아르바이트 경험을 정규직 경력처럼 가치 있는 시간으로 치는 경우는 전문직을 제외하면 드물다. 채용 시장만 그렇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근로자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일을 오래 해도 직급도 능력도 늘 제자리인 기분이다.
어차피 돈만 벌려고 하는 일인데 뭐 어때. 임금 노동과 예술 활동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멋진 계획의 일부니까 다 괜찮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사원 시절처럼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안 괜찮은 건 아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무척 고무적인 성과이므로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 여기에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벌써 2천 자 넘게 썼고, 이걸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13분이다. 오늘도 분량 조절과 정시 취침 모두 실패.)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100점짜리 완벽한 행복은 없고, 늘 만점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작은 불행이 마냥 작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너무 우울해지기 전에 서둘러 아르바이트의 장점부터 나열해보겠다. 먼저 당연하게도 고정 수입을 벌어다준다. 내가 매번 고객을 찾아나서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던 자영업과 달리 누군가 나를 고용해서 정해진 임금을 준다! 이 기분이 너무 그리워서 고등학교 급식실 청소 알바를 했던 건데, 이 재택 아르바이트는 컴퓨터로 데이터를 검수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자처럼 행주질로 인한 팔꿈치 부상이나 출퇴근이라는 무시무시한 위험 요소에 노출되지 않는다. 일일 근무 시간이 평균 3시간 정도로 퇴근 후 원하는 예술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도 허용된다. (이런 귀한 자원을 늘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특성상 고정된 계약 기간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는데, 이젠 차라리 무기한 일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게 될 정도로 무척 만족스러운 조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아르바이트의 대전제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일을 10년을 한다고 해서 내가 전에 모르던 새로운 걸 배우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약 80페이지 분량의 매뉴얼을 숙지해야만 할 수 있는 업무이므로 일체의 숙련도를 요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고, 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받아먹는 과정에서 나름의 짬과 일머리 역시 생길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업무 범위가 넓어지거나 거기에 걸맞는 책임이 커질 일이 없는 건 확실하다. 시간이 쌓여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는 기분은 마냥 유쾌하지 않다. 경력에 비례해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굳이 나를 비교하지 않아도, 제자리뛰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매일 3시간 동안 똑같은 화면을 응시하며 똑같은 리듬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그 생각을 잊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런 임금 노동의 단점을 감수하며,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해보려는 예술 활동 성과를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제보다 한 글자 더 쓰고 한 장 더 그릴 수는 있지만 정확히 내가 어디쯤 왔는지, 이 방향이 맞는 건지 알기 어려운 건 아르바이트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는 한 달에 한 번 들어오는 월급의 형태로 성과를 환산해 보여준다. 예술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예술을 통해 벌어들인 경제적 성과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이런 이중 생활을 택한 만큼 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고, 구독료로 얼마나 벌었는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난 그냥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나답게,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예술을 하고 싶은데 지금 이렇게 적으면서도 이 말이 허망한 먼지처럼 느껴진다. (그새 2시 42분이 됐다. 졸려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르바이트가 정해진 시간 동안 런닝머신 위에서 뛰는 거라면, 예술은 거대한 숲속에서 길을 잃어 걷고 걸어도 계속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둘 다 계속 발을 움직이고 있지만 결국 제자리에 붙박혀있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한 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이 직업에 대해, 예술에 대해 물어온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도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래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돈만 주구장창 벌다가 예술로만 돈을 벌려고 애쓰고, 그러다가 이렇게 임금 노동과 예술 활동을 완전히 분리시키게 되기까지 나의 세상이 수만 번 무너지고 새롭게 태어났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같은 저주를 변주하는 나 자신을 애써 모른척하고 있는 걸까봐 두렵다.
안 그래도 1)같은 공간에 n시간 이상 갇혀있는 것 2)사람들과 대면으로 소통하는 것 3)그런데 그 일에 수입이 달려있다는 부담감 등에 취약한 저에겐 북페어 참가란 스불재(=스스로 불러운 재앙)에 가까운데, 이번 북페어는 유독 준비 과정에서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많았어서 그런가... 평소보다 가기 싫은 마음이 커도 너무 크네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가야죠. 그러니 많이 놀러오셔요. 북페어 참가 관련 소식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제가 일일 인스타그램 사용 시간을 30분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대신 X(구 트위터) 체류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요.
오늘은 거기에서 제가 주워온 각종 짤들을 공유합니다.
(예전에는 태현이처럼 사는 게 멋진 줄 알았는데 요즘은 그냥 기훈이가 되고 싶네요.)
(아아아악!!!!)
번잡한 저의 정신상태를 잘 보여주는 구성인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면 다음주 원고를 읽으실 즈음에 저는 비행기 안이거나 막 영국에 도착한 직후겠네요. 과연 그 전에 세이브 원고를 써서 올려둘지 아니면 비행기 안에서 허겁지겁 쓰고 있을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
아무튼 다음주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글과 그림은 어떠셨나요?
댓글로 남겨주시는 소감과 응원이 창작에 큰 힘이 됩니다!
-----------------------------------------------
©연옥의 집. All rights reserved.
친구에게 구독 권하기
구독 해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