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조직 밖 노동자, 그게 뭐 대수라고

연옥
2024-02-24


독자님, 안녕하세요. 일단 작은 사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북페어 이틀 차에 쓴 글이라 전보다 더 산만하고 두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써버리면 이번주 목요일에 올라올 글이 없을 거라 고민 끝에 일단 올립니다. 댓글로 타박을 하시더라도 저는 비행기 안에 있을 거라 아마 읽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속으로만 해주시고 댓글로는 예쁜 말만 남겨주세요(?) 하하…


북페어에는 늘 저의 책인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을 데려가는데요. 책을 팔기 위해 같은 멘트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어요. 그 책을 썼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또 다른 사람이라는 걸 말이죠. 그동안 많은 게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결국은 제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아리송한 기분을 담아서 역시 아리송한 글을 써봤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흐린 눈과 함께)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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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생 첫 책을 낸 건 2022년 여름. 퇴사를 한지 만 2년 밖에 흐르지 않았던 시점이라 회사 다니던 시절 기억이 비교적 생생했고(지금은 그저 전생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회사 밖 세상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래서 그 두 경험을 아우르는 책을 쓰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대화하고 놀라워했다. ‘세상에,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가능한 삶이 있다는 게.’ ‘회사를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생각해도 끔찍해.’ ‘이런게 바로 조직 밖 노동자의 삶이겠죠?’ 


지금은 어떨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3일 간 진행되는 북페어 중 이틀을 무사히 보냈다. 여전히 2022년 여름에 나온 책을 팔고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한 번도 업데이트 되지 않은 책 소개 멘트로 영업을 한다. 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온 열정을 담아서 독자들을 끌어모으던 그때와는 다르게 나의 태도는 전보다 심드렁해졌다. 이젠 육성으로 책을 소개하는 것도 귀찮아서 간단한 소개글을 적어 책 표지에 붙여두었다. 권태만이 이유인 건 아니다. 뭐랄까, 이젠 회사 밖에서 삶을 일구는 게 내게 너무도 당연하고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대단히 놀랍거나 책을 써서 외치고 다니고 싶은 주제가 아니다. (물론 이미 만들어놓고 수백 부의 재고가 남은 책은 어서 팔아치워야하니 여전히 떠들고 다니고 있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느낀 건, ‘조직 밖 노동’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다는 거였다. 이들을 모두 ‘조직 밖 노동’이라고 묶어서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찾는 데에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선 통상적으로 ‘프리랜서’라고 부르는 직업인의 경우 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 안에서 일정 수준 경력을 쌓거나, 조직 경험 외에 다른 방식으로 전문성을 쌓아 직접 클라이언트와 거래할 수 있는 수준의 스킬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직군이나 전문 능력은 대부분 ‘디자인’ ‘마케팅’과 같이 뚜렷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나에겐 그런 이름이 없었다. 첨삭 노동은 개인 고객을 상대하는 부업이나 과외에 가까웠을 뿐, 프리랜서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있었다.


한때에는 강의로 수입을 만들고 싶었었다. 비록 불특정 다수와 부대끼는 북페어에서는 입이 무거운 편이지만, 누군가 돈을 주고 멍석을 깔아준다고 하면 사람들 앞에서 떠드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프리랜서 강사도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 프리랜서로서 주된 정체성이나 수입을 책임지는 분야에 대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조직 밖에서 살아남기’와 관련된 유용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었던 나에겐 별개의 직업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프리랜서 플랫폼에 입문하거나 고객과 거래할 때, 혹은 클래스나 모임을 운영할 때 분쟁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개설했다. 그 결과는…. 음, 반쯤 성공했고 반쯤 실패했다. 생각보다 강의 준비에 만만치 않은 품이 들어갔고, 시간과 돈을 들이고 싶을 정도로 내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강의 준비와 홍보에 꾸준한 노력을 들인다면 그 길을 계속 가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그 정도로 강의를 많이 하거나 나 자신을’ 강사’라고 정의하고 싶진 않았나보다.


그렇게 일보 전진 삼보 후퇴를 반복하던 끝에 문득 깨달았다. ‘내가 욕심이 과했구나.’ 넉넉한 수입을 벌어다주는 일이 겸사겸사 자아까지 실현해주는 건,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복이었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런 특별한 소수일지도 모른다는 애꿎은 희망을 놓지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힌 걸까. 회사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좋아하는 일을 심지어 잘해내기까지 하는 사람에게서만 뿜어져나오는 광채를 질투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실력도 늘 제자리걸음인 알바생, 열정만 있다면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다고 망상하는 예술가에게서는 왠지 그런 광채를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그런 광채가 있다면 분명 엄빠가 마련해준 월세집에서 엄빠 카드로 생활비를 긁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알바생/예술가일 것이다…라고 우겨본다.) 대신 나에게는 이 글에서부터 느껴지는 우울한 패배감이 묻어나온다. 더 이상 이렇게 소속 없이 사는 게 대수롭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만족스럽지도 않은 자의 아우라.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걸 묵묵히 받아들이고 나만의 길을 걷는 멋쟁이인 척하지만, 몰래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미련. 그게 나다.


‘조직 밖 노동자’라는 키워드에 꽂혔던 과거가 멀게만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이 고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 글을 깔끔히 마무리할 방법을 준비하지 못했다. 일단 내일 다시 북페어 행사장에 돌아가서 책을 열심히 팔아야하는 건 맞다. 이미 나에겐 심드렁한 주제가 되어버린 퇴사의 결심과 조직 밖 삶에 대해 얘기하고 또 얘기할 것이다. 그렇게 주말에 큰 맘 먹고 마실을 나온 직장인들에게 흥미와 용기를 선사하고, 그 대가로 책값인 12,000원을 받아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다시 직장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때로는 북페어에서 책을 파는 사람 말고 사는 사람, 이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럼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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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페어에서 즉석 그림을 그려드리는 이벤트를 하는데, 벌써 스무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려서 그런가 손에 힘이 빠져서... 평소보다도 더 흐릿한 그림이 탄생했네요. 허허. 하지만 저의 그림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늘 행복합니다. (여러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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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곧 영국에 가니까 영국 노래 하나 추천합니다(...?) 브릿 락 골수 팬인 저의 반려자가 이 노래 선곡을 본다면 기함하겠지만요. 그도 그럴 것이, Take That은 주류에 충실한 틴 팝 장르의 보이 밴드였으니까요. 그의 취향보단 이 노래가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느끼하지만 여러분의 취향은 또 다를 수도 있고 저는 무척 좋아하는 노래라 들려드려봅니다. 90년대에 전성기였던 그룹이 데뷔년도로부터 20년 뒤에 연 콘서트에서도 CD를 집어삼킨 듯한 가창력을 보여주는 게 인상깊네요. 영국에선 비틀즈 이후로 이 정도 인기를 누린 그룹이 없다고 평가될 정도로 엄청났던 그룹답게 콘서트 규모도 어마어마하죠.


영국 간다고 저 노래만 올리면 반려자와 반려자의 모국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영국을 대표할만한 노래 아무거나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데이빗 보위 노래 아무거나 다 좋다"라고 해서... 제가 아는 노래 하나 더 올리고 갑니다. 

사실 반려자 음악 취향이 엄청 섬세하고 까다롭거든요. 그래서 그 중 노래 하나 추천해줬으면 좋겠는데, 구독자님들 뿐만 아니라 무려 저에게서도 꽁꽁 숨기는 비밀이라 그런가 쉽게 공개를 안 하려고 하네요. 참내. 일단 이 노래는 검증된 명곡이니까 안심하고 올려봅니다.


그러고보니 저... 진짜로 곧 출국하네요. 가서도 열심히 글 써서 다음주 원고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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