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_______후 취소 불가

연옥
2024-03-03


독자님, 안녕하세요. 한국은 일요일 저녁 6시 즈음이겠군요. 제가 있는 영국은 일요일 아침 9시랍니다. 한국에선 늘 대낮에 느즈막히 일어나던 제가 영국에선 아침 7시에 벌떡 일어나 글을 쓰는 갓생을 살고 있네요. 시차의 순기능이랄까요… 아무튼.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시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쓰고 싶은 글이 생겨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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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신지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소식을 들은 건 1월 중순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장례식 날짜는 3월 초로 잡혔다고 했다. 사망 시점으로부터 3일 내에 상을 치르지 않으면 영혼이 영원히 이승을 떠돈다고 믿는 문화권 출신으로서는 좀 의아했지만, 그 문화권에서는 예의범절 역시 중시하기에 왜 그런 건지 묻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영국에 와서 시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답을 들었다. 

“장례식 준비가 엄청 오래 걸리거든. 최소 4주에서 6주, 길면 두 달도 걸려.” 

어차피 얘기가 나왔겠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더 궁금했던 질문도 던지기로 했다. 

“그럼… 그동안 돌아가신 분은 어디에 모시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냉동고에 두는 거지 뭐.”


한 달이 넘도록 ‘냉동고’ 안에 누워있을 시할아버지의 모습을 잠시 상상했다.


2년 전에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엔 나를 꽉 안으며 인사를 해주시고, 피아노도 연주하시고, (영국인답게) 차도 끓여주시고, 나와 반려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참 예쁜 한 쌍이구나”라고 말하고 또 말하셨었는데.

그때도 이미 파킨슨병이 많이 악화된 상태라, 친구분에게 우리가 영국에 왔다는 소식을 전하겠다며 전화기를 집어드는 할아버지의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손에 넣은 전화기도 사실 전화기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리모컨을 계속 무선 전화기로 착각하시는 듯 했다.

상태가 안 좋은 날엔 몇 마디 대화도 뚝뚝 끊어졌고, 상태가 좋은 날엔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나와 배웅을 해주시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해 발을 끌며 힘들게 걸으셔야 하는데도 굳이 문 밖으로 나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모습을 보며 참 뻔한 생각을 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내리사랑을 이길 사랑은 없구나.

그리고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그 날이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뵙는 날인 것 같았다.


엄격히 따지자면 그 날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진짜 마지막 인사는 엊그제 장례식에서 나눴으니까.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관짝을 활짝 열어놓고 한 명씩 다가가 인사를 나누는 절차는 없었지만, 굳게 못박힌 관을 앞에 두고 시를 읊고 묵념을 하는 시간은 있었다. 누군가와의 세 번째 만남이 그의 장례식일 수 있다니. 살아 생전엔 겨우 두 번 밖에 뵙지 못한 분을 떠올리며 우는 게 괜히 유난스럽게 느껴져서 참다가, 주변에 앉아있는 가족들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에 맞춰 눈물을 흘려보냈다.

나의 반려자를 깊게 사랑한 가족의 죽음이었기에 슬프기도 했지만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시간은 늘 앞으로만 흐른다는 것.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것들도 언젠가 모두 속절없이 사라지고,  사람도 그 예외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삶이라는 게 결코 길지 않다는 것.

또 다른 뻔한 생각이었다. 


-

10대와 20대는 끝없는 시작의 연속, 불확실한 가능성을 마구잡이로 실험하는 시간이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은 곧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뜻이었고, 내가 무엇이 될 지도 모른 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피로하기보단 설레였다.

그때는 딱히 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대외활동이든, 동아리든, 학교나 직장이든, 무언가 하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었다가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되었으니까. 마지막 매듭도 늘 남이 아닌 내 손으로 묶었기에 당당했다. 당시에 내가 경험했던 끝 중 진짜 진정한 의미로 불가역적인 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슬펐지만 울진 않았다. 항암 치료를 했다면 여명을 몇 년 더 늘릴 수 있었겠지만, 할머니는 남은 삶을 온전하게 누리고 싶다며 완강히 거부하셨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씩씩하게 생을 즐기다가 짧고 굵은 투병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뒷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뭐랄까, 그때는 죽음이 그런 실체 없는 관념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라든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라든가,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가 연재하는 칼럼에서 읽어낼 법한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그만큼 잘 와닿지 않았다. 가끔 할머니만 만들 수 있었던 부추전과 닭볶음탕이 그립지만 그뿐이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외할머니의 죽음보다 더 불가역적으로 느껴졌던 끝은 바로 나의 결혼이었다. 태생과 함께 평생 주어졌던 ‘싱글’이라는 상태에 법적인 종지부를 찍는 일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종로구청 구석의 어느 창구에 혼인신고서를 들이밀던 손이 덜덜 떨렸다. 창구에 세워진 플라스틱 가벽에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약 10개 국어로 번역되어 대문짝만하게 붙어있었다. ‘혼인신고 후 취소 불가!!!!!!’


그렇게 자발적 죽음을 맞이한 과거의 나를 제대로 애도할 시간도 없이, 열 살이 넘어가는 나의 반려묘들이 하나 둘씩 아프기 시작했다. 예전엔 애들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며 호들갑을 떨면 동물병원 원장님이 “에이, 아직은 고령묘 아니예요”라며 손사래를 쳤었는데, 실없는 과장이었던 말들이 현실이 된 뒤로 진료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네 마리 중 세 마리가 이빨의 일부 혹은 전부를 뽑았고, 수술을 할 때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더라도 병원이 책임질 수 없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손이 점점 더 떨렸다. 결국 한 마리가 한동안 입으로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병약해져서 코에 줄을 끼웠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깨우침을 얻기엔 충분했다. 

나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다.

사랑하는 존재들은 늘 생각보다 빠르게 스러졌다.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떨리던 나의 손과, 전화기로 착각한 리모컨을 천천히 집어들며 떨리던 시할아버지의 손이 겹쳐 보였다.

희미하던 정신이 잠시 명료해질 때마다 우리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할아버지의 얼굴도 떠오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취소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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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소처럼 만화 말고, 놀며 쉬며 그린 그림들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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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강아지 유치원(!)을 운영하시는데 거기에 다니는 원생 중 몇 마리를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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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는 지금 저와 같이 지내고 있는 시할머님네 강아지 둘이에요. 아래에 있는 '몰리'라는 친구는 이 집에 오기 전에 입양과 파양을 여러 번 반복해서 유기불안을 겪는 친구인데, (왠지 모르겠지만) 저를 엄청 좋아해서 제가 안고 있을 때 누가 가까이 오면 저를 보호하겠다고 저런 표정을.. 짓는답니다..ㅎ 이렇게 된 이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저를 이만큼 좋아해주는 마음이 참 고마워요.

이젠 저와 시할머니를 비롯한 시댁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불안이 점차 나아지고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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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온 이후로 스크린타임이 대폭 감소했더라고요. 아마 사진을 찍거나 집에 있는 고양이들을 관찰하러 펫캠을 보는 시간 외에는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아서 그럴 텐데요. 스마트폰 중독자가 핸드폰 하는 대신 대체 뭘 하고 지내는 건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어디에도 풀지 않은 미공개 영국 근황 사진(?)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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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내고 있는, 반려자의 외할머님네 댁의 거실입니다. 사진에서부터 아늑함이 풍겨나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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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는 마당 겸 정원이 있어요. 지금은 날이 추워서 푸릇함이 덜하지만 그래도 자연 가득한 느낌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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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옆에는 울타리를 두른 운동장 비스무리한 게 있는데요. (여기에선 이걸 'paddock'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시어머니가 돌보는 강아지들을 여기로 데려와서 풀어놓고 뛰놀게 해요.

영국답게 비가 끊길 듯 말 듯 계속 오는데, 그렇게 흙바닥이 진흙탕이 되어도 강아지들은 개의치 않더라고요. 

그 결과 이런 사진 속 광경이 연출되었네요. (사진 속 인물이 강아지 유치원 원장님이자 저의 시어머님입니다.)

+ 저렇게 진흙 범벅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간 뒤에 한 마리씩 다 목욕을 시키신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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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대형견들도 많아요. 저의 반려자를 암살하려는 것처럼 사진이 찍혔는데 반가워서 얼굴을 핥아주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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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강아지들과 산책도 다녀왔어요. 끝없는 벌판과 흐린 날씨... 미친 바람... 영국 시골 그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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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내내 저의 곁에 있어준 고양이 '리마'와 강아지 '벤지'를 보여드리며 마무리합니다. 


오늘의 글과 그림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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