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작은 마을, 작은 일, 작은 삶

연옥
2024-03-12

⚠️모바일로 작성되어, PC로 봤을 때 이전 글보다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집에서 와이파이에 문제가 생겨서 PC 작업이 불가능하거든요. 🥲 그렇다고 서울처럼 지천에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가 널린 곳도 아닌지라..😅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독자님 안녕하세요! 한국은 날씨가 어떤가요? 각자 계신 곳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영국보다는 비가 덜 오고 해를 보기 조금 더 쉬울 것 같긴 해요. 이곳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 정도로 따뜻하지만, 일기예보를 보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수시로 비가 내렸다 그치거든요. 2주라는 체류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나봐요. 슬슬 한국이 그립네요.


사실 반려자의 고향에 와본 건 결혼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일주일 정도 짧게 머물렀던 이후로 이번이 겨우 두 번째랍니다. 이번에도 아주 오래 지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려자의 역사가 묻어있고 그가 아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 관광을 위한 평범한 여행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그만큼 지역 사회와 주민들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도 많고요. 이번 글에서는 그 가운데에서 느낀 점을 담아보았습니다. 한 번 같이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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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으로 치면 읍내에 해당하는 곳까지 차를 끌고 나와서 장을 봤다. 마트 입구를 나와서 길을 건너고 있는데, 남편이 길 건너편에 지나가는 차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쟤 왠지 내 이종사촌 같은데?” 어떻게 스쳐 지나가는 차 속의 운전자를 보자마자 알아본 건지, 나아가 최소 10년은 안 봤을 이종사촌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는 건지 신기할 수도 있지만, 이 손바닥만한 마을에 사촌도 아닌 이종사촌이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여겨지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내게 마지막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남편의 양가 가족 거의 대부분이 3대째 이 마을 내지는 마을 근처에 여전히 살고 있다. 조부모님은 물론이고 삼촌과 사촌들, 그리고 부모님의 사촌들과 그들의 자식들까지 말이다.


한국처럼 특정 성씨를 공유하는 가문이 대부분 장악한 집성촌 같은 것도 아니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웃사촌 관계도 몇 대 째 이어져 내려온다. 앞서 언급한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남편이 한 말이 “저 분은 아직도 여기서 일하고 있네”였다. 남편이 초등학생 때부터 일하던 한 직원 분이 아직도 같은 마트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였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는 한 번 열린 가게가 없어지는 경우는 드물었고, 설령 가게가 바뀌더라도 건물은 그대로다. 여기선 건물이 100년 정도 나이를 먹은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웬만한 마을에 하나씩 있는 교회 건물들은 최소 14, 15세기에 지어졌고 엊그제에는 무려 로마 시대에 생겼다는 담벼락도 보았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물들과, 지박령마냥 20년째 마트 계산대를 지키는 직원과,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친척들. 남편이 왜 이곳이 답답해 죽겠다며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쳤는지 이해한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된 것들을 지키려 애쓰는 훌륭한 문화와 별개로, 역사상 침략당할 일이 거의 없었던 강대국인 덕분에 많은 유적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는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 어디 침략을 당하지 않는 수준에 그쳤었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대영제국 시절에는 세계 곳곳을 침략하고 약탈하고 다녔는데, 솔직히 그때 축적한 부가 이런 여유로운 삶의 모습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뇌피셜이고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얘기와는 별 상관이 없으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현실적으로 이 정도로 작은 규모의 마을에서 먹고 사는 방법이었다. 일단 남편 가족을 기준으로 보면 차를 몰고 최대 30분 거리의 소도시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강아지 유치원을 운영하는 시어머니처럼 마을 내에서 창업을 한 분도 있다. 국가에서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는 공공 임대 주택도 종종 보이고, 맞벌이 부부일 경우 결혼과 동시에 집을 구입하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로 집값이 저렴하다. 물론 영국도 최근에 물가가 크게 뛰었고 전보다 집을 사는 게 어려워졌다고는 하는데, 남편보다 10살 정도 밖에 많지 않은 삼촌만 해도 결혼하면서 첫 집을 구입했다는 걸로 보아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학교 동창 중 마을을 떠나지 않은 친구들의 경우, 20대 중반부터 아이를 낳고 정착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2018년 기준 영국의 혼외 출산율, 그러니까 한 해에 태어난 아기들 중 결혼한 관계가 아닌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비율이 48.4%일 정도로 결혼 없이 동거만 하다가 아이를 낳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일자리도 있고 집을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한정적인 사례를 토대로 한 주관적인 비약이므로 정확하지도 않을 거고, 이 곳의 삶을 마냥 추앙하거나 미화할 의도도 없다. 다만, 나고 자란 작은 마을을 억지로 등 떠밀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남편처럼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삶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확실히 드물다. 그건 비단 충분한 인프라 덕택 때문만인 건 아닐 거다. 한국처럼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거나, 자녀를 더 좋은 학교로 보내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도 한 몫 할지도 모른다. 한때 전쟁으로 초토화되어 지독히 가난했고, 땅덩어리도 좁고, 천연자원도 부족해 오직 두뇌 하나로만 신분 상승을 꾀해야 했던 우리나라와는 애초에 풍토부터 다른 것이다. 


그래서 학교의 등급이나 직업의 경중을 한국만큼 촘촘히 가르지 않고, 나고 자란 마을에서 평생 동안 적당히 먹고 사는 걸 실패나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강의 기적’ 같이 압축된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필요성이 없던 곳에는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부산물과 부작용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은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제국주의의 수혜자가 누리는 혜택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와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나’로 초점을 옮겨본다. 몇 년 안에 서울을 떠나 통영에 정착할 계획인 나. 그곳에서는 내가 하는 일이 닿는 범위도, 만나는 사람들의 수도, 어쩌면 벌이도 서울에 살 때보다 줄어들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서울에 비해 집이 무척 싸다는 것이다.) 그게 좋아서 계속 머물게 될지, 아니면 고여있는 느낌이 지겨워 남편이 그러했듯 다시 떠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 작은 일을 하기로 한 나 자신이 실패작처럼 느껴져서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정한다면, 그리고 하등 중요하지 않은 타인의 시선에 무던해질 수만 있다면, 작은 삶도 충분히 좋고 만족스러운 삶일 수 있다. 서울공화국에 몸도 머리도 갇혀있던 내게 지난 2주 간의 영국 시골살이가 전해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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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엔 강아지들을 보여드렸으니 이번엔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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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이카: 올블랙 흑묘. 기골이 장대한 전형적인 대장냥이상.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옥구슬 굴러가는 꾀꼬리 목소리라 반전 매력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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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마: 고등어. 간질 발작을 앓고 있음. 한 번씩 발작을 겪을 때마다 성격이 180도로 바뀜. 재작년에는 엄청 조용하고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는데, 올해에는 말이 많아지고 소파에 놓인 한 쿠션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생김. 매일 약을 먹고 있어 발작 빈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외에는 무척 건강하다고 합니다.

*위 자세는 발작과 아무 상관이 없고 그냥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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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푸스: 역시 고등어. 모든 고양이들이 외출냥이로 생활하고 있지만, 푸스는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어서 레어 포켓몬처럼 만나기 힘듦. 시할머님 직장에서 돌보던 고양이였는데 입 주변에 생긴 종양을 제거한 뒤로 할머님이 집에 데려와서 돌보시는 중. 그래서 자세히 보면 입이 살짝 삐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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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지난 화에 이어 영국에서의 일상을 나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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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갔는데 바다가... 갈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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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체불명의 거품은 해조류 뭐시기 때문이라는데 그냥 수질오염 같기도 하고... 아무튼 수영을 하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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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현지의 피시앤칩스가 최고네요. 한국에서 몇 배 돈을 주고 사먹으면 늘 일식 생선까스 아니면 대구전이던데, 여긴 확실히 달라요. 튀김옷이 더 바삭하고 감칠맛이 납니다. 맥주를 넣기도 한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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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등장했던 라이카는 이렇게 가끔 침대 위에 올라와서 애교를 부려줍니다. 덩치는 곰 같은데 이런 모습도 보여주다니.. 귀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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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강아지 유치원 원생들을 데리고 오면 여기서 사는 강아지 벤지가 놀러나가기도 하는데, 서로 처음 봤다고 냄새 맡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입니다. 귀여운 녀석들..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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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말도 한 마리 있어요. 시크한 성격이라 저렇게 멀찌감치 구경만 합니다. 하지만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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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오프라인 버전. 물건을 사고 팔거나 마을에서 주최하는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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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양 농장인데, 사진 찍으려고 다가갔더니 밥 주는 줄 알고 저-멀리 지평선 근처에 있는 애들부터 미친듯이 달려와서... 무서워서 도망갔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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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할머님댁 뒷마당에 있는, 호수 같은 연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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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배도 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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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사를 하고 있는 거죠 네일기씨?

오른쪽은 네일기씨 동생이고, 가운데 벤치는 할머님이 예전에 키우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찰리’를 기리기 위해 만든 벤치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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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근처에는 닭들이 살고 있어요. 집에서 먹는 계란은 다 이 친구들로부터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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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한식을 만들어서 대접하겠다고 난리를 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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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성공했습니다. 현지에서 구한 정체 불명의 고추장과 된장이 너무 맛이 없었고... 깐마늘이 없어서 다진마늘 만든다고 한 시간 동안 마늘만 까야했으며... 늘 가스불만 쓰다가 인덕션을 처음 써봐서 온도 조절에 대실패... 그런데 이제 12인분을 준비해야 하는 힘겨운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 했습니다. 

아, 그리고 햇반이 인기 있었어요. 여기서 주로 먹는 쌀은 동남아에서 먹는, 한 알 한 알 굴러다니고 뭉치지 않는 쌀인데 윤기 좌르르하고 뭉쳐지는 쌀을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고 하시더라고요. 8개나 챙겨온 햇반 언제 다 털어먹나 걱정했는데 기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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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에 힘입어 어제는 두부강정을 만들었는데, 다들 너무 맵다고 하셔서 실패. 고추장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서 제 입에는 매운 맛이 아예 안 느껴질 정도였는데! 아쉬웠지만 네일기씨랑 둘이서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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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어제 놀러나갔다가 시어머니가 사주신 ‘기니피그 돌’을 자랑하며 마무리합니다.


이틀 뒤면 출국을 하네요. 

집에 가자마자 마라엽떡을 먹을 것입니다....

혹은 맵고 칼칼한 음식 아무거나 추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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