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4년, 햇수로 5년. 회사를 2020년 6월에 떠났으니, 그 뒤로 흐른 시간을 짐작해보면 대충 이 정도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을 수집했다. 작가, 첨삭 노동자, 1인 컨설팅 기업 운영자, 기획자, 모임 운영자… 길게는 몇 달, 짧게는 하루만 몸 담았던 단기 알바까지 합치면 열 개는 거뜬히 넘길 거다.
남이 지어준 이름보다는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책을 스스로 내어 작가가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모임을 열어 모임장이 되었다. 조직 밖에서 나의 일을 만든다는 건 이토록 자유롭다. 나는 언제든, 누구든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누구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니라는 말과 같다.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들, 스쳐 지나가듯 몸 담았던 조직에서 내게 붙인 이름들이 누더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난 몇 년간 일을 해 온 방식은 산발적인 충동과 시작에 불과했다. 그마저 온갖 분야에 걸쳐 흩어져있었던 게 문제였다. 모임은 열 때마다 글쓰기, 회고, 프리랜서 플랫폼, 뜨개질로 주제가 바뀌었다. 조금 깊게 파보려고 하면 금방 흥미가 식었다.
책을 만드는 것처럼 꾸준히 흥미를 지속했던 분야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더욱 발전시켜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든가 그런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서 돈방석에 앉는 1인 출판사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을 뿐더러,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업주의와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계에 부딪힌 일들은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옮겨담아 치워두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도하고, 시작하고, 중단하고, 다시 시도했다. 그때 그때 예뻐보이는 천 쪼가리 몇 개를 줍고, 충동적으로 이어 붙이고, 더 관심이 가는 쪼가리를 찾아 헤메는 과정이었다. 큰 그림을 그려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옷처럼 생긴 옷이 만들어질리 없었다.
물론 조각 하나하나를 모으는 과정이 소중했고, 내 손으로 맘대로 이어붙인다는 재미도 한때 느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오랫동안 ‘일-실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험만 5년째 하다보니 할 만큼 한 것 같았다. 모든 실험은 어떤 명제를 검증하기 위해 존재하고 설계된다. 그렇다면 내가 검증하고자 했던 명제는 무엇이었는가? ‘도저히 회사는 못 다니겠다’라는 부작위에 그쳤을 뿐, 뭔가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었던가? ‘회사 밖에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막연한 이상 말고는 없지 않았나?
이제는 실험을 멈추고, 실험 결과를 토대로 나아갈 방향을 점검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정착을 하고 싶어졌다.
한 길을 꾸준히 파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고운 옷을 지어서 입고 싶어졌다.
나를 오직 하나의 직업으로만 소개하고 싶어졌다.
누더기 아래에 숨어있는 나를 끌어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만으로 4년, 햇수로 5년. 회사를 2020년 6월에 떠났으니, 그 뒤로 흐른 시간을 짐작해보면 대충 이 정도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을 수집했다. 작가, 첨삭 노동자, 1인 컨설팅 기업 운영자, 기획자, 모임 운영자… 길게는 몇 달, 짧게는 하루만 몸 담았던 단기 알바까지 합치면 열 개는 거뜬히 넘길 거다.
남이 지어준 이름보다는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책을 스스로 내어 작가가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모임을 열어 모임장이 되었다. 조직 밖에서 나의 일을 만든다는 건 이토록 자유롭다. 나는 언제든, 누구든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누구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니라는 말과 같다.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들, 스쳐 지나가듯 몸 담았던 조직에서 내게 붙인 이름들이 누더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난 몇 년간 일을 해 온 방식은 산발적인 충동과 시작에 불과했다. 그마저 온갖 분야에 걸쳐 흩어져있었던 게 문제였다. 모임은 열 때마다 글쓰기, 회고, 프리랜서 플랫폼, 뜨개질로 주제가 바뀌었다. 조금 깊게 파보려고 하면 금방 흥미가 식었다.
책을 만드는 것처럼 꾸준히 흥미를 지속했던 분야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더욱 발전시켜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든가 그런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서 돈방석에 앉는 1인 출판사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을 뿐더러,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업주의와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계에 부딪힌 일들은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옮겨담아 치워두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도하고, 시작하고, 중단하고, 다시 시도했다. 그때 그때 예뻐보이는 천 쪼가리 몇 개를 줍고, 충동적으로 이어 붙이고, 더 관심이 가는 쪼가리를 찾아 헤메는 과정이었다. 큰 그림을 그려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옷처럼 생긴 옷이 만들어질리 없었다.
물론 조각 하나하나를 모으는 과정이 소중했고, 내 손으로 맘대로 이어붙인다는 재미도 한때 느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오랫동안 ‘일-실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험만 5년째 하다보니 할 만큼 한 것 같았다. 모든 실험은 어떤 명제를 검증하기 위해 존재하고 설계된다. 그렇다면 내가 검증하고자 했던 명제는 무엇이었는가? ‘도저히 회사는 못 다니겠다’라는 부작위에 그쳤을 뿐, 뭔가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었던가? ‘회사 밖에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막연한 이상 말고는 없지 않았나?
이제는 실험을 멈추고, 실험 결과를 토대로 나아갈 방향을 점검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정착을 하고 싶어졌다.
한 길을 꾸준히 파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고운 옷을 지어서 입고 싶어졌다.
나를 오직 하나의 직업으로만 소개하고 싶어졌다.
누더기 아래에 숨어있는 나를 끌어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