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먼지작... 아니 먼지 인스타그램)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새벽에 1시간짜리 영상 번역 일을 덥석 무는 바람에, 일하는 주말을 보내게 된 게 아쉬워 투덜투덜.
웬만해서는 주말에 칼같이 쉬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이 플랫폼 통해서 일이 너무 안 들어오는데, 이렇게 긴 영상(그리고 분량에 비례해서 많이 들어오는 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냥 일만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아쉬워 겸사겸사 번역 공부 15일차를 기념해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놔본다.
- 2개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안다고 자동으로 번역을 잘하게 되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 번역을 하면서 느낀 건데, 지금까지 내 머릿속 영어의 세계와 한국어의 세계는 거의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영어로 말할 때에는 영어로 생각하지, 한국어를 떠올린 다음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말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언어를 독립적으로는 능숙하게 구사해도, 두 언어 간의 다리를 놓을 일은 없었다.
- 그러다보니 어떤 단어의 정의를 그 언어로 설명하고,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는 있지만, 다른 언어 체계 내에서 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단어를 찾으며 버벅댈 때도 많다. 뭔가 장보기 목록을 들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이 진열된 선반을 어렵게 찾았는데 텅- 비어있는 느낌... 같은 그림이 그려진 카드 두 개 위치를 기억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찾고 찾아도 그 그림이 그려진 두 번째 카드가 나오지 않는 느낌...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다가 딱 들어맞는 찰진 표현을 찾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런 기분의 빈도를 늘리고 속도를 올리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 생각보다 딱딱한 직역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영상 번역은 더욱.
- 영어로 된 콘텐츠를 볼 때 영어 실력 떨어질까봐 자막을 아예 켜지 않거나 영어 자막을 켰었는데, 이제부터는 한국어 번역을 참고하는 차원에서 한국어 자막을 켜고 본다. 근데 자막을 읽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진짜 분량이 짧고 엄청나게 압축적이다. 자잘한 디테일을 싹 들어내고 정곡을 찌르는 몇 단어만 팍팍 박은 경우도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 한 페이지를 대여섯 줄의 짤막한 시로 표현하는 수준의 압축이랄까... 단어를 하나 하나 그대로 옮기는 직역은 정말 필요하거나 불가피한 경우, 그리고 분량상 허용이 되는 경우가 아니면 지양하는 것 같다.
-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의역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어디까지가 센스 있는 의역이고, 어디서부터 원문을 왜곡하는 오역인지 구분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 그런 감각이 하루아침만에 생길 리 없다. 많이 읽고, 보고,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풍부한 표현과 맥락을 흡수하고, 이와 별개로 체계적인 공부도 필요하다. 피드백도 필요하고. 기초 독학 단계를 졸업하면 피어 리뷰든, 전문가의 코칭이든 아무튼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찾아봐야겠다.
- 요즘 영상 번역하면서 드는 의문:
- 하나의 대사가 2개 이상의 자막으로 나누어질 경우, 실제 발화 순서와 자막의 순서가 불일치해도 상관 없는지?
- 영화나 드라마처럼 뒤에 나올 얘기가 앞에 나왔을 때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든 자막 순서를 발화 순서와 일치시키는 게 필수인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웬만해서는 발화 순서 = 자막 순서를 지키려 하는 것 같다.
- 반면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상업적 영상 번역은 이 문제에 대해 따로 검수자 피드백을 받아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일단 그냥 하고 있기는 한데... 도저히 순서를 바꾸는 게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에서도 뭔가 내가 모르는 묘책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 e.g. The store sells various fruits, such as apples, oranges, and lemons를 번역한다고 할 때, 한국어로는 "그 가게는 다양한 과일을 판다 / 사과, 오렌지, 레몬 등"의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번역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영상 번역을 할 때에는 "그 가게는 사과, 오렌지, 레몬 등 다양한 과일을 판다"와 같이 순서를 바꾸어 번역하고 있다.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 로마어 표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 반도체 공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난해한 분야와 관련된 영상을 번역하다보면, 아무리 검색해도 정확히 일치하는 한국어 표현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다. 귀찮았는지 그냥 영어로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는 용어도 많고, 그런 경우 검색해서 바로 나오면 그나마 다행인데 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난감하다. 분명 다른 표현이 있는데 찾아도 나오지 않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없는 건지 알 수 없으니까.
- 그럴땐 무리해서 번역하다가 오역을 감수하기보다는 마치 고유명사인 마냥^^ 소리나는대로 적고, 아직까지 그 문제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본 적은 없긴 하다. 추측건데 검수자들도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고 나랑 인터넷 검색 실력이 비슷하다면 찾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가끔 묻고 싶기는 하다. '근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지금이야 공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는 게 없으니 모르는 게 뭔지도 모르고, 초심 버프를 받아서 마냥 신날 때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질문만 늘어가고, 해도해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수렁의 바닥을 헤집는 시간을 겪게 될 텐데... 그 시간, 잘 보낼 수 있겠지? 기대도 되지만 걱정도 앞선다. 뭐 근데 걱정된다고 안 할 것도 아니니까, 그냥 해야지. 일단 내일 예정된 마감 기한부터 잘 지키자. (일요일에도 일이라니.. 일이라니..!! 대체 왜 이렇게 마감을 타이트하게 주는 것인가!!!)

사후세계의 '사'가 죽을 사가 아니라 일 사라면...?
(출처: 먼지작... 아니 먼지 인스타그램)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새벽에 1시간짜리 영상 번역 일을 덥석 무는 바람에, 일하는 주말을 보내게 된 게 아쉬워 투덜투덜.
웬만해서는 주말에 칼같이 쉬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이 플랫폼 통해서 일이 너무 안 들어오는데, 이렇게 긴 영상(그리고 분량에 비례해서 많이 들어오는 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냥 일만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아쉬워 겸사겸사 번역 공부 15일차를 기념해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놔본다.
지금이야 공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는 게 없으니 모르는 게 뭔지도 모르고, 초심 버프를 받아서 마냥 신날 때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질문만 늘어가고, 해도해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수렁의 바닥을 헤집는 시간을 겪게 될 텐데... 그 시간, 잘 보낼 수 있겠지? 기대도 되지만 걱정도 앞선다. 뭐 근데 걱정된다고 안 할 것도 아니니까, 그냥 해야지. 일단 내일 예정된 마감 기한부터 잘 지키자. (일요일에도 일이라니.. 일이라니..!! 대체 왜 이렇게 마감을 타이트하게 주는 것인가!!!)
사후세계의 '사'가 죽을 사가 아니라 일 사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