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3종 인쇄본 수령 및 (눈물의) 실제본 비법 공유

연옥
2024-09-22

2024년 9월 9일, 아홉 개의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총 1500부가 겨우 박스 아홉 개에 다 담겼으니 그래도 나름 컴팩트한 편이네요. 


박스를 열어보면 이렇게 페이지별로 인쇄, 재단된 종이가 담겨있습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종이 한가운데에는 '오시'라고 부르는, 움푹 들어간 선 작업이 들어가있어요.

제본을 하기 위해 종이를 반으로 접을 때 종이가 주름지거나 갈라지지 않고 깔끔하게 잘 접는데에 도움을 준답니다. 

이게 없었다면 본폴더라는 도구로 일일이 오시를 넣어줘야 했을테니... 덕분에 작업 시간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손제본, 실제본을 어떻게 하냐면요:

1. 일단 이렇게 페이지별로 순서대로 정렬을 해줍니다.

페이지 순서가 바뀐 채로 제본을 하면 정말 끔찍하겠죠?


2. 페이지를 겹친 채로 반을 접어서 책 모양을 만들어줍니다.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2-n. 500번 반복을 해야 이 짓이 끝나겠지만... 

앉은 자리에서 500부를 모두 제본할 수는 없으니 일단 이 정도에서 멈춰보겠습니다.

(사실 이 정도 양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제본하기 엄청 어렵습니다.)


3. 필요한 실의 길이를 계산해서 미리 잘라둡니다. 

경험상 책등의 3~4배 정도 잡으면 넉넉합니다.

뭔가 아방가르드한 크리스마스 트리 같기도 하고 좀 멋지지 않나요?

 

실 자르고 있는데 무릎 위로 올라온 잘생긴 고양이 얼굴도 잠시 감상합니다.   


4. 종이 아래에 코르크판을 받치고,

오시선을 따라서 송곳을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줍니다.

저는 미리 두꺼운 종이를 잘라서 구멍 위치를 표시한 가이드판을 만들어놨어요. 

가이드판을 오시선 옆에다가 두고 표시한대로 뽕뽕 뚫어주면 됩니다. 


5. 바늘에 실을 끼워서 열심히 제본을 합니다. 

제본 방식은 아주 다양합니다. 표지/내지의 두께, 책등 너비 등에 따라 할 수 있는 제본 방식이 아주 다양하다는데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그냥 예전에 북바인딩 키트를 사서 배웠던 가장 쉬운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봤어요.


6. 그렇게 한 권을 제본하는 데에 약 3분에서 3분 30초 가량이 걸립니다. (궁금해서 시간을 재봤어요.)

1시간 동안 스무 권을 제본할 수 있으니,

영화를 한 편 보면서 제본을 하면 대충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셈입니다.


중간에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는데요.

종이가 두꺼워서 송곳으로 내는 구멍의 크기도 작지 않다보니, 

자꾸 오른쪽 책처럼 양쪽 페이지가 연결되는 구간에서 책 한가운데에 흉하게 구멍이 숭숭 나서 감상에 방해가 되더라고요.


구멍 자체를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몇 번 테스트를 해보니 오시선을 기준으로 구멍을 좌측 또는 우측으로 몰아서 뚫는지에 따라서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 중 어디서 구멍이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지 조정할 수는 있더라고요.


위 <탄생구멍>의 경우 좌우 페이지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 책 후반부에 등장을 해서

오시선 기준으로 구멍을 좌측으로 냈더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예약 판매에 많은 사랑을 보내주셔서

n시간 동안 부지런히 작업을 한 결과,

주문건 대부분을 추석 연휴 시작하기 전에 배송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예정된 몇 개의 북페어를 위해 부지런히 제본을 해놓고

한동안 제본을 좀... 쉬어야겠어요... (손목이 너덜...)